반유신투쟁을 벌이다 체포돼 옥고를 치른 고 김남주(1946∼1994) 시인과 동료, 가족들이 법원으로부터 국가에 당한 정신적 피해를 인정받았다.
광주지법 민사14부(재판장 나경)는 “1973년 3∼4월 지하신문 <함성>, <고발> 사건으로 투옥된 고 김 시인, 이강, 김정길, 김용래, 이평의, 윤덕연씨와 이들의 가족 등 42명에게 국가가 정신적 손해배상금 총 31억원을 지급하라”고 8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고 청구액의 9.9∼44.2%를 인정했다.
김 시인은 전남대 영문학과 4학년이던 1972년 12월, 중학교 동창이자 대학 친구였던 이강씨와 유신체제 폐해를 고발하는 <함성>을 광주 일대에 배포했다. 전국 최초의 반유신 투쟁 지하신문이었다. 이듬해 3월 이강은 비슷한 성격의 신문 <고발>을 제작해 당시 서울에 피신해 있던 김남주에게 보냈으나 중앙정보부 검열에 발각됐다.
경찰은 제작에 관여했던 15명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연행해 구속했고 김남주·이강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김정길·김용래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이평의·윤덕연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받았다. 이로 인해 이들은 1973년 7월 모두 대학에서 제적 처리됐고 재입학해 졸업하기까지 10여년이 걸렸다. 일부 피해자는 중등학교 2급 정교사 자격을 취득하고 전남의 한 고등학교에 임용됐으나 보안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임용이 취소되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2014년 재심을 청구해 2021년 5월 무죄를 선고받은 뒤 지난해 3월 국가를 상대로 정신적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번 재판 쟁점 중 하나는 소멸시효였다. 정부는 피해자들이 석방된 1973년 8∼11월부터 민법의 손해배상 청구기한 3년을 지나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에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무죄 판결 확정일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나경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이 사건은 국가가 국민을 불법으로 구금하고 증거를 조작한 재판을 받게 해 불법성이 매우 크다”며 “피해자들과 가족은 간첩 또는 간첩 가족이라는 오명을 받아 사회적·경제적 불이익을 입었고 50년에 이르는 오랜 기간 배상이 지연된 점을 고려했다”고 위자료 책정 이유를 설명했다.
김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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