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윈난성의 주민들로부터 민요를 수집 중인 정율성 선생. 민속원 제공
박민식 국가보훈처장관이 광주광역시의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사업에 색깔론을 들이대며 철회를 요구했으나, 강기정 광주시장은 “예정대로 역사공원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광주 출신의 항일운동가로 일제강점기 중국으로 건너가 활동한 정율성(1914~1976)은 중국 현지에서 ‘중국 혁명음악의 대부’로 칭송받고 있다.
강 시장은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광주는 정율성 선생을 영웅시하지도, 폄훼하지도 않는다. 광주의 눈에 그는 뛰어난 음악가이고, 그의 삶은 시대적 아픔”이라며 “그의 업적 덕분에 광주에는 수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광주는 정율성 선생을 광주의 역사문화자원으로 발굴하고 투자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박 장관은 에스엔에스(SNS)에 올린 글에서 “광주광역시 차원의 시 재정이 쓰인다고는 하지만 시 재정은 국민의 혈세가 아닌가”라며 “국가보훈부 장관으로서 자유대한민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앞장섰던 사람을 국민 세금으로 기념하려 하는 광주시의 계획에 강한 우려를 표한다. 전면 철회돼야 마땅하다”고 밝혔다. 그는 “그가 작곡한 조선인민군 행진가는 한국전쟁 내내 북한군의 사기를 북돋웠다”며 “6·25 전쟁이 발발하자 전쟁 위문공연단을 조직해 중공군을 위로한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광주시는 동구 불로동 878㎡에 올해 연말까지 정율성 역사공원을 조성할 예정이다. 정율성 역사공원 예정 터는 그의 생가로 지목된 3곳 중 한 곳이다. 시는 토지 보상비를 포함해 모두 48억원을 들여 연말까지 공원 조성을 완료할 방침이다. 정율성 역사공원엔 그의 삶과 음악 세계를 기리는 광장과 정자 등이 들어선다.
정율성은 지금도 중국에서 존경받는 음악가다. 광주에서 4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항일무장단체인 의열단 단원으로 훈련을 받으며 독립운동을 했다. 음악에 뛰어났던 그가 항전의 의지를 담아 만든 ‘옌안송’은 중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팔로군 행진곡’은 중국 군가로 지정됐고, 군대·학교 공식행사에서 불린다.
그는 타이항산 전선에 자원해 의열단의 옛 동지들이 만든 조선의용군에 합류해 2년간 최전선에서 싸웠다. 해방 이후 평양으로 간 그는 한국전쟁 때 종군해 남으로 내려온다. 이후 중국에서 어렵게 생활하다가 1976년 62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13억 중국인들에게 지금도 인기가 있는 그는 이념 때문에 한국에선 외면받다가 광주 남구청이 생가를 발굴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5년 남구청 주최로 제1회 정율성국제음악제가 열린 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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