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어부 신평옥씨가 7일 광주고법에서 열린 반공법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수산업법 위반 사건 재심에서 읽은 자필 최후 변론서 일부.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북한경비정에 의해 납북됐던 그때도, 빨갱이라 손가락질받고 살았던 지난 세월에도, 이 법정에 서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저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 신평옥입니다.”
10일 납북어부 신평옥(84)씨가 ‘한겨레’에 공개한 재심 최후 변론서를 보면 50년 삶에 대한 회한과 가족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는 사흘 전 광주고법 형사1부(재판장 박혜선) 심리로 열린 재심에서 반공법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수산업법 위반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납북어부 신평옥씨(오른쪽)가 7일 광주고법 재심에서 반공법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수산업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은 뒤 소감을 말하고 있다.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신씨는 재심 선고 공판에서 자필 변론서를 읽으며 법정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신씨는 “징역을 살고 온 뒤 고용해줄 선주도 없었고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힘든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못난 남편 만나 지금까지 고생만 한 집사람, 잘 가르치지도, 잘 먹이지도, 잘 입히지도 못했지만 바르게 커 준 자녀들이 그저 고맙다”고 말했다.
어선 ‘동림호’ 선장이었던 신씨는 1971년 5월20일 인천 연평도 인근 바다에서 조기를 잡다가 선원 8명과 함께 북한경비정에 의해 납치됐다. 신씨는 이듬해 5월10일 풀려나 고향 여수에 도착했지만 곧바로 경찰에 연행됐다. 신씨가 일부러 어로한계선을 넘어 북한에 들어갔고 사상교육을 받으며 국가기밀을 제공한 뒤 귀국할 때 간첩지령을 받았다는 것이다.
검찰은, 반공법·수산업법·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씌웠다. 신씨는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허위 자백을 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징역 1년6개월, 자격정지 3년을 선고하면서도 간첩죄는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1973년 9월 ‘북괴지역임을 알고 자의로 들어간 이상 북괴 구성원과 회합이 있을 것이라는 미필적 예측을 했다고 인정된다’며 파기환송했다. 파기항소심에서 신씨는 형량은 유지했지만 간첩죄는 유죄 판정을 받았다. 신씨는 1974년 1월 만기 출소 이후 경찰 감시를 받으며 살았다.
신씨는 지난해 10월 재심을 신청해 올해 6월 법원으로부터 재심 결정을 받았다. 검찰도 과오를 인정했다. 검사는 “북한에서 온갖 고초를 겪은 피고인은 대한민국에 돌아와서도 환영받지 못했고 수사와 재판을 받는 동안 기본권을 보장받지도 못했다. 50여년 전 적법절차 준수와 기본권 보장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현직 검찰의 일원으로서 피고인에게 깊이 사과드린다”며 말했다.
신씨는 “이제 마음 편히 눈 감을 수 있겠다”며 “같이 납북됐던 선원 5명도 재심을 하고 있는데 빨리 무죄 판결을 받아 나처럼 억울함을 풀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납북어부 신평옥씨가 7일 광주고법에서 재심을 마친 뒤 부인 마현자씨의 굽은 손을 보여주며 가족들의 고통을 설명하고 있다.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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