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시와 ‘동학농민군 희생자를 기리는 사죄비건립추진위원회’는 30일 오전 11시 나주역사공원(나주시 죽림동 60-33)에서 ‘동학농민군 희생자를 기리는 사죄비’ 제막식을 연다. 사죄비건립추진위 제공
한·일 두 나라 시민들이 동학농민군 희생자를 기리는 사죄비를 세우고 제막식을 연다. 동학농민군 학살을 사죄하는 비를 세우는 것은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지 129년 만에 처음이다.
전남 나주시와 ‘동학농민군 희생자를 기리는 사죄비건립추진위원회’는 오는 30일 오전 11시 나주역사공원(나주시 죽림동 60-33)에서 ‘동학농민군 희생자를 기리는 사죄비’ 제막식을 개최한다. ‘나주 시민의날’에 맞춰 열리는 제막식엔 일본인 동학기행 참가자 30여명과 동학 기행을 함께했던 한국 쪽 시민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사죄비는 2006년부터 한일동학기행에 참여해온 일본 역사학계 학자와 시민들과 한국 시민들이 모금한 비용으로 세워진다. 사죄비건립추진위에는 동학연구자인 박맹수(68) 전 원광대 총장과 나카쓰카 아키라(95) 일본 나라여자대학 명예교수와 이노우에 가쓰오(80) 홋카이도대학 명예교수 등 한일동학기행단 참가자들과 나주학회 회원 등 두 나라 학자 및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사죄비엔 동학농민혁명 당시 나주 동학군에 대한 일본군의 만행을 사죄하는 뜻이 담겨 있다. 사죄비 양면엔 한국어와 일본어로 ‘나주에서 희생당한 동학농민군을 기리고자 일본 시민들이 먼저 사죄의 마음을 담은 성금을 자발적으로 모았다. 한국 시민과 나주시의 협력으로 비를 세우게 됐다’는 글귀가 적혀있다.
사죄비 건립은 2016년 나주 동학답사에 참가했던 한일동학기행단 일본 쪽 연구자들이 제안한 것이다. 나주목향토문화연구회 한 회원이 “왜 살육 역사를 발굴하려고 하느냐”고 묻자, 일본 연구자들은 “1894년 일본군이 가해했던 역사를 덮어 놓는다는 것은 학자적 양심에 위배된다. 나주에 작은 위령탑이라도 세우고 싶다”고 답변했다. 이후 두 나라 연구자들은 이 문제를 논의해 위령탑을 사죄비라는 이름으로 바꾸기로 했다.
동학농민군을 토벌하기 위해 전남 나주에 주둔했던 일본군 쿠스노키 비요키치 상등병이 남긴 종군일지.나주시 제공
나주 일본군 토벌부대 후비보병 제19대대가 들어온 것은 1895년 1월5일이며, 2월8일까지 35일간 호남초토영(나주초등학교 자리)에 주둔했다. 동학농민군은 나주를 포위했지만, 점령하지 못했다. 일본군 토벌부대 대대장 미나미 고시로가 남긴 ‘동학당 정토 경력서’ 등 관련 자료를 보면, 1895년 1~2월 나주목으로 끌려온 동학의 접주 이상 지도자들만 783명 이상이 처형됐다. 박맹수 원광대 교수는 “접주급 이상 동학 지도자들이 붙잡혀 나주목으로 후송돼 처형됐다”며 “나주 사죄비 건립이 한국과 일본이 과거 역사를 직시하고 평화와 상생의 길을 만드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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