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들이 6월 전남 화순경찰서에서 5·18 당시 자료를 조사하고 있다.5·18조사위 제공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5·18조사위)가 1980∼1981년 붙잡힌 간첩 2명은 5·18과 무관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5·18조사위는 1일 “지난 30일 제100차 전원위원회에서 5·18 당시 검거된 간첩 이창용(본명 홍종수)사건과 1981년 검거된 간첩 손성모 사건은 5·18민주화운동과 관련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진상규명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창용은 1980년 5월 5·18 직전 전남 보성으로 침투한 뒤 같은 달 23일 서울역에서 주민신고로 붙잡혔다. 서울시 경찰국은 검거 다음날인 5월24일 ‘광주시위 선동 남파 간첩’으로 발표하며 5·18이 북한의 선동으로 일어난 사건인 것처럼 꾸몄다.
5·18조사위는 정보당국과 경찰 수사기록, 재판기록, 담당 수사관 등 대인조사 등을 통해 이창용은 검거 당시 독침과 혀를 깨무는 방법으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해 정식 조사는 6월10일께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창용의 남파 목적은 고정 간첩망 복구와 지하당 구축 임무 등으로 광주와는 관련이 없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손성모는 1980년 5월4일 전남 해남으로 침투한 뒤 전국의 사찰로 숨어다니다가 1981년 2월15일 주민신고로 경북 문경 혜국사에서 붙잡혔다. 2017년 한 북한이탈주민은 손성모가 승려로 위장 침투해 5·18 당시 무등산 증심사에 머물며 광주에 침투한 북한특수군을 지휘했다는 소설을 펴내 논란이 일었다.
조사위는 손성모의 수사기록, 공판기록, 방첩사 사건기록, 수사관 대면조사 등을 통해 손성모가 승려로 위장 침투해 1981년 2월 체포되기 전까지 전국 34개 사찰을 전전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5·18 기간에는 증심사가 아닌 전북 남원 서진암에 머물렀던 것으로 파악했다.
김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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