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100년 시장과 마을과 거리의 문화사’를 낸 심영의 작가. 정대하 기자
“광주의 시장과 마을과 거리를 이곳저곳 찾아다니면서 특히 ‘장소성’에 주목했어요.”
‘광주 100년 시장과 마을과 거리의 문화사’(푸른사상 냄)를 최근 낸 심영의(65)작가는 21일 “거주자들에게 특정 장소가 갖는 의미와 중요성이 무엇인지 들여다봤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8월 광주문화재단에서 제2회 박선홍 광주학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학술도서 발간 지원으로 이 책을 냈다.
박선홍 광주학술상은 고 박선홍 선생의 뜻을 이어 광주의 역사, 문화, 사회, 인문환경 등에 대한 연구 공로가 큰 저술가에게 주는 상이다. 심사위원들은 “광주의 전통시장과 유서 깊은 마을에 대한 탐구로 지역민의 삶과 매우 밀접한 광주의 문화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했다”고 평가했다.
심 작가는 일제의 강제력으로도 끝내 바뀌지 않았던 오일장 등 시장의 장소성에 주목했다. 그는 “공설시장을 내세운 일제는 재래시장을 헐뜯었지만, 식민지 조선인들은 전통시장을 해방의 공간으로 활용했다”고 말했다. 100년의 역사를 지닌 양동시장은 5·18 때 시장상인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군에게 제공했던 역사적 공간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대기업 계열 백화점, 대형 할인마트들이 들어오면서 양동시장도 위기를 맞는다. 심 작가는 “다만, 시장 초입 닭전머리 옛날식 튀김닭은 여전히 인기”라고 했다.
대인시장은 1992년 공영터미널이 광천동으로 옮겨간 뒤 쇠락했다. 그는 2008년 ‘대인예술시장 프로젝트’는 되레 젠트리피케이션을 불렀다고 봤다. “대인시장이 예술시장으로 활기를 찾아가며 시장 문턱을 낮출수록 임대료는 올라갔다.” 심 작가는 “예술가들이 시장이라는 특성을 살려 창작과 판매를 연계할 수 있는 시스템을 충분히 만들지 못한 것도 실패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양림동은 광주 근대사를 이끌었던 인물들이 활동한 지역으로, 정율성 생가가 있는 곳이다. 심 박사는 “2023년 정율성에 대한 매카시즘적 선동이 시작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가 여전히 반공주의적 억압에서 자유롭지 못한 정치적 환경에 있음을 드러내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옛 소련 거주 한민족인 고려인들은 2000년부터 광산구 월곡동에 터를 잡기 시작해 지금은 7천명이 살고 있다. 전국 최대의 고려인 집단 거주지이다. “우리 근대사의 비극과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의지의 표상으로 조성된 공동체”라는 게 심 작가의 생각이다.
5·18시민군 출신 문학박사·소설가
양동시장·대인시장·양림동·월곡동…
시장과 마을의 과거·현재 탐구로
“광주 문화사 새로운 시각 접근” 평가
갤러리와 화방, 표구점, 골동품점, 소극장 등 문화공간 90여곳이 모여있는 궁동 예술의 거리는 예향 광주의 상징적 장소로 불린다. 충장로와 금남로는 광주의 중장년 이상 세대에게 친밀함을 주는 공간이다. 그는 “광주학생독립운동과 4·19, 5·18항쟁의 기억에서 금남로와 충장로는 매우 뚜렷한 장소성을 갖는다”고 말했다. 대인동과 월산동 등 광주의 성매매 거리의 변화 양상도 살폈다. 그는 “원고를 쓰기 위해 여러 장소를 다니며 사진을 찍고 사람을 만났다. 광주의 역사와 문화의 뿌리가 깊고 단단하다는 점을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심 작가는 1980년 5월23일 옛 광주교도소 인근에서 붙잡혀 108일 동안 고초를 겪다가 기소유예로 풀려난 5·18 시민군 출신이다. ‘전남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5·18민중항쟁 소설 연구’ 논문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소설가 겸 문학평론가로 다양한 글을 쓰고 있다.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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