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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창고 위의 콘서트홀…독일의 과거·미래 ‘완벽한 하모니’

등록 2019-11-07 05:00수정 2019-11-07 07:11

[부산시-한겨레통일문화재단 공동기획]
‘항만 르네상스’ 현장을 가다
국외-⑤독일 함부르크 하펜시티

북유럽 아이콘 ‘엘베필하모니 홀’
고풍스러운 창고거리 원형 살리며
11개 구역 ‘도시 속의 도시’ 신구 조화
독창적 랜드마크들도 답사객 불러

“젊은층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곳”
녹지율 25% 등 시민 접근성 높이고
주거단지마다 ‘공공 비율 30%’ 갖춰
800개 기업 유치 등 장기계획도 순항
함부르크 하펜시티의 엘베필하모니 전망대에 오르면 엘베강과 원도심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함부르크 하펜시티의 엘베필하모니 전망대에 오르면 엘베강과 원도심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난 9월 말 찾아간 독일 함부르크의 엘베 필하모니 홀(이하 엘피)엔 생기가 넘쳤다. 강변의 입구부터 항구 풍경을 감상하거나 건물 구조를 구경하려는 인파가 줄을 이었다. 행렬에 끼어 360도 파노라마 전망통로에 올라서자 원도심의 성당 지붕과 항구에 정박한 범선, 옛 수로와 하펜시티가 한눈에 들어왔다. 방문객들은 사방으로 펼쳐진 풍경에 감탄을 연발하며 셀카를 찍느라 왁자지껄 웃음꽃을 피웠다.

2년 전 문을 연 엘피는 전위적 건축미와 최고의 공연물 덕분에 하루 1만5000명이 찾는 북유럽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10년 동안 8억4900만유로(1조1200억원)를 투자한 랜드마크를 공공 공간으로 개방한 덕분이다.

엘피는 외견상 높이 110m의 복층 구조로 마치 위로 뚫린 개미집을 떠올리게 한다. 하부는 1960년대 붉은 벽돌 수만개를 차곡차곡 쌓아 올린 높이 37m의 옛 코코아창고가 떠받치고 있다. 상부엔 태양과 강물을 반사하는 곡선형 유리패널 1100개를 물결 모양으로 이어붙인 73m짜리 콘서트홀을 올려놓았다. 이곳엔 2100석의 공연장을 비롯해 호텔 식당 카페 빌라 등이 함께 들어섰다. 하펜시티 유한책임공사 수잔 뷜러(Susanne B?ler) 홍보실장은 “엘피가 함부르크를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 관광 필수코스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고, 공연마다 예약이 몰려 입장권을 구하기 어려울 지경”이라고 말했다.

함부르크 하펜시티의 랜드마크인 엘베필하모니 콘서트홀. 37m 높이에 설치한 360도 파노라마 전망대가 시민에게 개방되어 있다.
함부르크 하펜시티의 랜드마크인 엘베필하모니 콘서트홀. 37m 높이에 설치한 360도 파노라마 전망대가 시민에게 개방되어 있다.

함부르크는 북해로 흐르는 엘베강 하구 110㎞ 지점에 있는 내륙항구다. 1200년 전 성곽을 쌓으며 도시를 열었고, 중세 때 한자동맹의 중심으로 급성장했다. 유럽 전역을 수운으로 연결하는 이점을 살려 무역·해운·상업이 발달했으나 1842년 대화재와 1940년대 2차대전으로 시련을 맞기도 했다. 전후 복구 단계에서 180만명의 독일 제2 도시자, 소득이 가장 높은 도시주로 발돋움했다.

붐볐던 함부르크항은 1960년대 들면서 산업구조가 재편되고 교통수단이 발달하자 쇠퇴에 직면했다. 기선을 위한 옛 항구의 부두와 창고는 컨테이너의 상용화로 쓸모없이 버려졌다. 교역품이 광물이나 곡물에서 공산품 위주로 달라지며 변화의 물결 앞에 서게 됐다.

위기를 감지한 함부르크시는 옛 항구인 하펜시티를 ‘도시 속의 도시’로 만드는 항만재생을 추진했다. 먼저 도시의 역사를 기억할 공간부터 선정했다. 먼저 항구 들머리의 고풍스러운 옛 창고거리(Speicherstadt·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를 보전목록에 넣었다. 좁다란 운하 양쪽에는 1885~1927년 커피 홍차 담배 등을 보관하기 위해 붉은 벽돌로 지었던 창고들이 원형을 유지한 채 줄줄이 늘어서 있다. 항구의 정취를 간직한 고딕 양식의 5~6층짜리 창고들은 공연장이나 전시장으로 바뀌었다.

1879년 지은 곡물창고를 개축해 만든 국제해양박물관
1879년 지은 곡물창고를 개축해 만든 국제해양박물관

함부르크시는 창고거리 바깥의 보세구역을 항만재생의 대상지로 삼았다. 1997년 전통적인 원도심에 어우러진 자유롭고 개방적인 새도심을 만들겠다며 하펜시티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를 바탕으로 2000년 마스터플랜을 세웠고, 2010년 이를 구체화한 수정안을 냈다. 2025년까지 1만5000명이 사는 주거지 7000곳을 건설하고, 기업 800곳을 유치해 일자리 4만5000개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담았다. 옛 항만지역은 위치와 기능에 따라 11개 구역으로 나눠 단계적으로 개발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공공성과 개방성을 높인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토지 용도를 건물 32%, 공원·녹지 등 공공용지 24%, 교통시설 23%, 사유지 개방시설 14%, 사유지 폐쇄시설 7% 등으로 설정한 것을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이런 기준에 따라 시민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공공 공간의 비율이 38%로 올라가면서 활력을 더했다.

함부르크 원도심과 하펜시티 공중사진 함부르크시 제공
함부르크 원도심과 하펜시티 공중사진 함부르크시 제공

이 사업에는 민간투자 100억 유로, 공공투자 30억 유로 등 모두 130억 유로(16조9000억원)의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 함부르크시는 마스터플랜을 만들고, 하펜시티 유한책임공사는 집행을 맡았다. 이 공사는 도시계획·토목·건축·환경·조경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 50여명이 도시의 가치를 높이는 일을 추진 중이다.

항만구역 안에 있는 옛 건물들도 외관을 살리고 내부를 개축해 활용 중이다. 1879년 지어진 곡물창고 3동은 선박의 모형·사진·영상 등을 전시하는 국제해양박물관으로 바뀌었다. 난방과 전기를 공급하던 발전소는 하펜시티의 조성 과정과 미래 계획을 알려주는 방문자센터로 쓰이고 있다. 이 센터에서는 새도시 전체를 500분의 1로 축소해 제작한 모형을 설치하고 답사와 견학을 위해 찾아오는 이들을 안내하고 있다. 주변에 있던 옛 세관 건물은 통관과 검역의 변천사를 정리한 독일세관박물관으로 새단장을 했다.

함부르크 시청 주변 원도심과 옛 항만 하펜시티의 도시계획 개념도 함부르크시 제공
함부르크 시청 주변 원도심과 옛 항만 하펜시티의 도시계획 개념도 함부르크시 제공

함부르크시는 건물을 신축할 때 마스터플랜에 따라 세부 조건을 달았고, 설계공모를 요구했다. 구역마다 특성이 유지되도록 시유지를 매각하면서 외관·재료·색깔·조명 등 조건을 달아 동의를 받았다. 옛 창고거리 부근엔 신축 높이를 7층 이하로 제한해 스카이라인을 망치지 않도록 했다. 녹지공원을 만들면서도 위치가 철로 주변으로 정해지자 몇 차례 회의 끝에 주거지 안쪽으로 이전해 소음을 줄이기도 했다. 독창성을 살리려는 개별 건물들의 설계공모는 도시의 품격을 높였다. 세계적 건축가인 치퍼필드와 테헤라니 등이 걸작을 내놓으면서 공모마다 응모작이 몰렸다. 55m 높이의 비대칭 마르코폴로 타워와 투명한 재료로 에워싼 유니레버 본사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유수한 건축상을 받으며 유명해졌다. 녹지율 25%와 산책로 10.5㎞ 등 녹색환경은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본부가 있는 도시에 어울리는 자랑거리로 꼽힌다.

1885~1927년 커피 담배 등을 보관하기 위해 함부르크 옛 항만에 붉은 벽돌로 줄지어 지은 창고거리 슈파이셔슈타트
1885~1927년 커피 담배 등을 보관하기 위해 함부르크 옛 항만에 붉은 벽돌로 줄지어 지은 창고거리 슈파이셔슈타트

김용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함부르크지사장은 “장기 계획과 집중투자가 성공 비결로 보인다. 하펜시티는 주거비가 상대적으로 높지만 젊은층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구역으로 자리를 잡았다. 상업·업무·주거단지뿐 아니라 문화공간과 교육기관 등이 두루 갖춰진 공간”이라고 전했다.

함부르크시는 하펜시티가 애초 설정한 목표의 절반 이상을 달성했다고 평가했다. 2008~2009년 금융 위기로 개발사가 빠져나가는 등 시련도 있었으나 사업의 진행은 대체로 순조로운 편이다. 이미 물류사인 쿤앤나겔(Kuhne & Nagel), 제조사인 유니레버(Unilever), 언론사인 슈피겔(Spiegel) 등이 이전했고, 200여개의 스타트업 디지털 기업이 뒤를 따랐다. 2012년 지하철이 들어오고, 2013년 하펜시티 대학이 개교하면서 주민 수와 일자리도 빠르게 늘고 있다. 시는 사업 일정대로 2022년 대형 크루즈 터미널을 열고, 2025년 높이 235m짜리 엘프 타워를 완공할 계획이다.

함부르크/글·사진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독특한 디자인으로 눈길을 끄는 마르코폴로 타워와 유니레버 사옥
독특한 디자인으로 눈길을 끄는 마르코폴로 타워와 유니레버 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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