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광주적십자병원은 옛 전남도청, 전일빌딩 등과 함께 5·18민주화운동과 광주 공동체 정신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옛 전남도청 등 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으로, 계엄군의 총칼에 부상 입은 수많은 광주시민이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목숨을 건졌다. 5월21일 옛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이후에는 몰려드는 환자들로 치료에 필요한 혈액이 부족하자 학생부터 유흥업소 종사자까지 헌혈에 동참하는 시민 의식을 발휘했다.
병원 의료진도 광주시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한국적십자운동 100년사>를 종합하면 당시 이무원 원장 등 병원 의료진은 5월20일부터 10일간 철야근무를 하며 부상자를 돌봤고 채혈업무 봉사활동을 펼쳤다.
적십자병원은 영화 <택시운전사>에서도 주요 장소로 표현됐다. 서울택시기사 김만섭(송광호)와 광주택시기사인 황태술(유해진)이 처음 만난 장소이자 택시기사들이 부상자들을 후송하던 대표적인 병원이었다. 당시 시위에 참여한 김태종 전 5·18기록관 연구실장은 “적십자병원은 치료비가 비싸지 않아 서민들이 자주 애용하던 곳이다. 5·18 때 부상 입은 시민들은 적십자병원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광주적십자병원이 나온 영화<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주)쇼박스 제공
수년간 방치됐던 옛 적십자병원이 이르면 올해 광주시민에게 돌아올 전망이다. 10일 광주시는 옛 적십자병원(대지면적 2843㎡) 매입을 위한 공유재산관리계획안을 최근 시의회에 제출했다. 시는 11일 열리는 시의회 임시회에서 동의를 얻으면 행정안전부의 재정투자 심사 등을 거쳐 1차 추경에서 매입 금액을 확보할 계획이다. 적십자병원 터의 감정평가액은 90여억원이다. 시는 모든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올해 8월 적십자병원 터를 매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적십자병원은 경영이 악화하자 1996년 4월 서남학원재단이 인수해 서남대병원으로 바꿔 운영했지만 경영 악화로 2014년 폐쇄됐다. 이후 서남학원재단은 경영 부실 등으로 2018년 교육부로부터 법인 해산, 폐교 명령을 받아 자산 청산 절차를 밟고 있으며 지난해 적십자병원 터도 공개 매각할 계획이었다.
민간업체에 넘어가면 공동주택 조성 등으로 철거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 5월 단체와 광주시민들은 광주시가 매입해 보존할 것을 요청했다. 광주시 5·18선양과 관계자는 “보존을 바라는 광주시민의 여론에 따라 옛 적십자병원 터는 매입해 원형보존을 기본 방침으로 세우고, 향후 5·18선양사업에 활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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