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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었다고 모른척 말아요”…5·18기념식 오른 최정희씨 사연

등록 2020-05-18 11:10수정 2020-05-18 11:47

[5·18 민주화운동 40주기]
남편 임은택씨, 암매장된 채 발견
30대에 홀로 세자녀 키우며 고생
최씨 “40년 고통받은 삶 억울해”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광역시 동구 옛 전남도청 앞에서 열린 제4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편지 낭독을 마친 최정희씨를 부축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광역시 동구 옛 전남도청 앞에서 열린 제4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편지 낭독을 마친 최정희씨를 부축하고 있다. 연합뉴스

“억울하게 희생당한 우리 남편과 폭도 집안으로 몰려 고통받고 살았던 우리 식구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옵니다.”

18일 광주광역시 동구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제40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무대에 오른 최정희(73)씨는 남편 임은택(사망 당시 35)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한 맺힌 40년 세월을 토로했다.

부산이 고향인 최씨는 국제시장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전파상을 운영하며 세 아이도 얻었다. 1978년 부부는 임씨의 고향인 전남 담양군 대덕면에서 소를 키워 팔기 위해 이사했다.

5·18민주화운동이 한창인 1980년 5월21일 오후 임씨는 소 판매대금을 수금하기 위해 마을 주민 고규석(당시 37), 이승을(40), 박만천(나이 미상)와 픽업트럭에 타고 광주로 향했다. 광주에서 난리가 났지만 군인들이 빠져나가 안전하다는 소식을 들은 터였다.

각자 볼일을 마친 일행은 귀가하기 위해 옛 광주교도소로 향했고 갑자기 사격을 받았다. 총알 4발을 맞은 임씨와 고씨는 중상을 입어 쓰러졌다. 다리를 맞은 박씨와 총알이 스쳐 지나간 이씨는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다.

이튿날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최정희씨는 이씨 등을 찾아 자초지종을 들었고, 군인들이 남편을 치료해줬을 것이라는 믿음에 고씨의 아내 이숙자씨 등과 광주에 있는 병원으로 찾아다녔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에서 사연이 소개된 희생자 임은택씨.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에서 사연이 소개된 희생자 임은택씨.

하지만 1980년 5월30일 광주시청으로부터 광주교도소 인근 야산에 암매장된 임씨와 고씨의 주검을 발굴했다는 연락을 받으며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임씨 주검은 구두 한짝과 팬티만 입고 있었고 온몸에 피멍 자국이 있어 죽기 직전 군인들이 구타한 것으로 추정됐다.

시댁 식구들은 임씨를 담양 창평면 선산에 안장했다. 분통함을 풀 길이 없었던 최씨는 매년 5월이 되면 광주 북구 망월동 묘역을 먼저 들러 다른 희생자 가족들과 슬픔을 나눈 후 남편의 묘를 찾았다. 1997년 국립5·18민주묘지가 준공됐을 때 최씨는 남편과 다른 영령들이 함께 있어야 한다고 가족들을 설득해 이장했다.

33살의 나이에 홀로 세 아이를 키워야 했던 최씨는 한때 친정이 있는 부산으로 가기도 했지만 경찰의 집요한 감시에 다른 가족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담양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수금해야 할 돈은 누구한테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고 오히려 남편이 빌린 돈은 가지고 있는 소를 다 팔아도 갚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최씨는 홀로 국밥집을 하며 간신히 자녀를 키웠다. 이날 기념식에서 최씨는 “젊어서 3남매 키우며 살기 팍팍했다. 한땐 먼저 떠난 당신이 원망스러웠다. 여보 다시 만나는 날 내가 너무 늙었다고 모른 척하지 말고 3남매 반듯이 키우느라 고생했다고 칭찬 한마디 해주시길 바란다. 우리 다시 만나는 날까지 부디 안녕히 계시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2017년 제37주년 5·18기념식부터 5·18로 인해 가족을 잃어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을 초청해 시대적 아픔을 전달하고 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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