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들이 지난 5월 오리온 본사 앞에서 청년노동자 서지현씨를 추모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구례시민사회모임 제공
“진짜, 어지간히 괴롭혀라.”
전북 익산의 오리온 공장에서 일하던 22살 노동자 서지현(22·여)씨가 석 달 전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말이다. 그의 절규는 간절했으나 코로나와 총선에 묻혀버렸다. 이를 들은 고향 주민이 장터로 모인다.
전남 구례의 시민단체들은 3일 오전 10시 구례 5일 장터에서 청년노동자 서지현씨가 숨진 진상을 규명하라며 집회를 연다. 이들은 “구례 출신의 어린 노동자가 직장 내 괴롭힘과 성추행 등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애끊는 부모의 마음으로 오리온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서울 구의역, 태안 화력발전소, 광주 하남목재소에서 청년노동자들이 잇따라 희생되고 있다. 이를 멈추려면 반노동적인 기업의 행태를 바꿔야 한다”고 촉구했다. 구례시민모임 왕해전씨는 “서씨는 특성화고 출신 여성 노동자라는 약자였다. 사회는 약자한테 모질었고, 죽음조차 새털처럼 가볍게 여기고 있다. 오죽하면 고향 주민이 나섰겠나”고 말했다.
서씨는 구례에서 초·중학교를 다녔고 순천 특성화고를 졸업하자마자 오리온에 입사했다. 그는 2년 동안 익산 3공장에서 근무하다 지난 3월17일 저녁 아파트 옥상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숙소에서 나온 메모 4장에는 “오리온이 너무 싫어, 돈이 뭐라고…이제 그만 하고 싶어” 라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서씨의 숙소에서 발견된 자필 메모 구례시민사회모임 제공
오리온 쪽은 “유족이 제기한 2018년 10월의 성희롱은 사후에 알았고, 현재 조사와 징계를 진행 중이다. 경찰이 사망 사건을 두 차례 조사했지만 죽음과 회사는 직접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고용노동부 익산지청은 사망 한 달 뒤 특별근로감독에 나서 이달 중순 결과를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익산지청 쪽은 “사업장에 여러 차례 나갔다. 사안을 여러 각도로 살피고 있다”고 전했다.
시민단체는 청와대 누리집에 국민청원을 진행 중이고, 익산·과 구례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기로 했다. 회사 쪽에서 책임을 계속 회피하면 불매운동도 펼칠 방침이다.
안관옥 박임근 기자
okah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