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새벽 전남 고흥군 윤호21병원에서 불이 나 119 소방대가 사다리차로 병원 내 환자를 구조하고 있다. 연합뉴스
10일 오전 전남 고흥군 고흥읍 윤호21병원 주변은 탄 냄새와 함께 깨진 유리창 조각이 널브러져 있어 이날 새벽 처참했던 화재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불은 이날 새벽 3시42분께 병원 1층에 자리한 내과와 정형외과 진료실 사이에서 난 것으로 추정됐다. 1층에 있던 병원 직원은 화재를 목격하고 119 신고와 비상벨을 눌러 화재 소식을 알렸다. 비상벨 소리가 내부 방송을 통해 전달되자 당시 병원 3∼7층에 입원한 환자 69명과 보호자 10명, 직원 7명 등 86명은 대피에 나섰다. 하지만 1층에서 시작된 불로 인해 연기가 위로 퍼졌고 내부에 있던 사람들은 현관으로 향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내부 불길은 잡히지 않았다.
고흥소방서 구조대가 화재 신고접수 7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을 땐 각층 병실 창문 밖으로 환자들이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있었고 20m 높이 옥상에도 다수의 환자들이 몰려있었다.
새벽 3시50분 대응 1단계(전 직원 소집)를 발령했던 고흥소방서는 새벽 4시10분 2단계(인접 소방서 동원)로 격상했고 자체 보유한 고가사다리차 1대와 순천·보성소방서에도 각각 고가사다리차를 요청했다. 또 소방의 연락을 받은 고흥읍 이사업체도 지원에 나서 모두 5대의 사다리차를 투입할 수 있었다. 구조대는 새벽 4시 안전매트리스를 설치하고 3층 등 비교적 낮은 높이는 일반 사다리로, 5층 이상은 고가사다리차로 구조를 시작했다. 스스로 빠져나온 환자 20명을 제외한 66명 중 47명이 사다리를 통해 대피할 수 있었다.
당시 병원 100여m와 떨어진 곳에서 화재를 목격했던 주민 ㄷ씨는 “새벽에 사이렌 소리가 시끄러워 밖을 내다보니 불이 환하게 보였다. 비가 오는 상황에서 살려달라는 소리가 들려 아수라장이었다”고 말했다.
불은 40분 만인 4시20분께 초기 진화했지만 인명피해는 막을 수 없었다. 1층 현관을 통해 내부로 진입한 구조대는 새벽 3시51분께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쓰러져 있던 ㄱ(70·여)씨와 ㄴ(70·여)씨를 발견해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끝내 숨졌다. 이들은 6층 입원환자로, 계단을 통해 1층 현관으로 대피하다 연기에 질식한 것으로 추정됐다. 또 28명이 연기를 많이 마셔 고흥, 순천, 광주, 보성 등 7개 병원으로 분산 후송됐으며 이중 화상을 심하게 입은 송아무개(82·여)씨도 치료 도중 숨졌다
화재는 아침 6시1분께 완전 진화됐다. 현재까지 화재 원인은 1층 내부에서 전기적 요인으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흥소방서 119대원들이 화재로 인해 파손된 고흥윤호21병원 유리창을 제거하고 있다. 김용희 기자
이번 사고는 환자들이 깊이 잠든 새벽시간에 발생했고 병원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아 피해를 키운 것으로 보인다. 2004년 지상 7층, 지하 1층 연면적 3210.6㎡ 규모로 문을 연 이 병원(138병상)은 주로 내과와 정형외과 환자가 많았으며 응급실은 있지만 야간에는 운영하지 않았다. 개설 당시 소방시설법에서 정한 스프링클러 의무설치 대상이 아니었으나 2018년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사고를 계기로 소방시설법 시행령이 개정되며 의무설치 대상에 포함됐다. 하지만 2022년 8월31일까지 유예기간이어서 설치를 미뤘던 것으로 파악된다. 소방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은 합동 감식을 통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찾을 예정이다.
박상진 고흥소방서장은 현장브리핑에서 “병원에 화재경보기와 옥내소화전 등은 있었다. 1층 진료실에 가연성물질이 많아 급작스레 불이 퍼진 것으로 보인다. 화재 원인은 정밀감식을 해봐야 알 수 있다”고 밝혔다.
김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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