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26일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이 서울 국회 정론관에서 군이 보관하고 있던 5·18민주화운동 사진물을 공개하고 있다.연합뉴스
박지원(78) 전 의원이 신임 국가정보원(국정원) 원장에 임명되며 국정원이 보유한 5·18민주화운동 관련 각종 자료와 기록을 공개할 것이라는 기대의 목소리가 높다.
29일 5·18기념재단과 5·18연구자 등의 말을 종합하면 1980년 5월 중앙정보부(국정원 전신)는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에서 전남지부를 운영하며 광주·전남 5·18 관련 정보를 수집, 분석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10·26 사건을 계기로 1980년 4월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겸임하며 중앙정보부는 사실상 보안사령부의 하위 조직으로 전락했지만 자체적인 정보 수집 활동은 이어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5·18연구자들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보안사령부 광주분실(505보안대)이 ‘일일속보철’ 형식으로 상부에 수시 보고를 했던 점으로 미뤄, 보안사보다 정보 수집 능력이 더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중앙정보부도 이에 못지않은 보고 문건을 만들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앙정보부는 1981년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로 이름을 바꾼 후 1985년 2월 전두환의 심복으로 꼽혔던 장세동 전 청와대 경호실장이 부장으로 임명된다. 장세동 부장 시절 안기부는 5·18 왜곡조직인 ‘80위원회’를 주도해 5·18 관련 자료 일체를 수집하고, 북한군 투입설, 광주교도소 습격설 등 왜곡 논리가 담긴 백서를 제작했다. 80위원회 자료는 1988년 또 다른 왜곡조직인 ‘511위원회’로 이어져 현재까지 5·18 폄훼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1980년 4월16일 최규하 대통령이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임명하고 있다.국가기록원 제공
5·18연구자들은 그동안 국가기관에서 주도한 10여 차례 5·18 진상규명에서 국정원은 제대로 협조한 적이 없어 이번 박 신임 원장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도 박 원장과 협의해 80위원회, 511위원회 자료를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박 원장은 지난해 11월 대안신당 의원 때 보안사가 만든 5·18 사진첩을 입수해 공개했고, 이달 27일 열린 청문회에서도 “5·18에 대한 국정원의 자료가 있다면 꼭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교수는 “5·18 기록을 왜곡하거나 폐기한 군사안보지원사령부(옛 보안사)와 달리 국정원은 조직 특성상 자료 일체를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정보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국정원의 조직 분위기를 박 원장이 정치력과 영향력을 발휘해 뛰어넘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도 “중앙정보부와 안기부가 수집하고 작성한 5·18기록물, 보고서가 명백하게 공개돼야 한다. 박 원장이 관심을 가지고 나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반면, 서주석 전 국방부 차관의 안보실 1차장 임명에 대해서 광주시민단체는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광주시민단체협의회, 광주진보연대 등 시민단체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511위원회에 참여했던 서주석 차장은 왜곡 활동 전모를 털어놓고 참회해야 한다.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활동이 용두사미가 되지 않도록 정부와 당사자들은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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