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전남 곡성군 오산면 성덕마을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구조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8일 오전 전남 곡성군 오산면 선세리 성덕마을에서는 중장비를 동원한 구조작업이 한창이었다. 멀리 산골짜기부터 흘러든 토사 위에서 구조대원들은 굴삭기 3대를 동원해 잔해를 치우고 있었다. 마을을 관통하는 성덕천은 흙탕물로 가득 차 금방이라도 넘칠 듯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전날 오후 8시30분께 성덕마을 인근 산 토사가 마을을 덮치며 주택 3동은 흙에 파묻혔고 바로 옆에 있던 2동은 20m가량 밀려났다.
파묻힌 주택 안에 있던 주민 5명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다. 구조당국은 인력 150여명과 장비 40여대를 투입해 매몰자 수색작업에 나섰지만 사고 발생 한 시간 뒤 윤 아무개(53) 이장 부부를 비롯해 혼자 살던 김아무개(71·여)씨가 구조돼 대형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굵은 비 때문에 난항을 겪은 구조당국은 계속 토사가 밀려들며 추가 붕괴 가능성이 우려되자 이날 0시께 작업을 잠시 중단한 뒤 아침 6시께 재개했다. 오전 8시15분께 이아무개(73·여)씨, 오후 1시45분께 이씨의 남편 강아무개(73)씨가 차례로 숨진 채 발견됐다.
8일 전남 곡성군 오산면 오산초등학교 강당에 전날 산사태가 일어난 성덕마을 주민들이 긴급 대피해 있다.
주민들은 하늘이 원망스럽다는 반응이었다. 전날 밤 사고가 일어나자 성덕마을 주민 40여명은 오산초등학교 체육관으로 대피해 밤을 새웠다.
오산초등 체육관에서 만난 전삼자(66)씨는 “집에서 저녁 연속극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쇠가 찢어지는 큰소리가 나더라. 깜짝 놀라 신발을 챙길 겨를도 없이 몸만 간신히 빠져나왔다”고 설명했다. 전씨는 “밖으로 나가보니 이미 집 몇 동이 흙 속에 파묻혀 있었다. 주변에 주차돼 있던 차량도 논에 자빠져 있어 아수라장이었다. 전기까지 나가는 통에 사방이 어두컴컴해 주변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평생 이 마을에 살았지만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성덕마을 주민들은 가까운 이웃이 참변을 당한 터라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워했다.
윤 이장은 서울 등에서 생활을 하다 7년 전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었다. 평소 마을 일에 발벗고 나서고 주민들과도 원만하게 지내 올해 초 주민 추천으로 이장에 뽑혔다. 강씨 부부도 3년 전 성덕마을로 귀촌하며 주민들과 친분을 쌓았다.
주민들은 이번 사고 원인을 지난해 12월부터 산에서 진행하고 있는 곡성∼화순 간 국도 15호선 확장공사로 지목했다. 도로를 평탄하게 만들려고 경사면에 쌓아뒀던 흙이 무너져 내렸다는 것이다.
김아무개(55)씨는 “산사태를 막으려면 산 아랫자락부터 옹벽을 세워서 흙을 채워 넣어야 하는데 이번 공사는 윗부분만 보강공사를 해 평소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5일에는 발파소리가 온종일 들리기도 했다. 발파 때문에 지반이 약해져 흙이 무너져 내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있는 곡성 경찰은 매몰자 수습을 마치는 대로 도로 확장 공사가 산사태에 영향을 줬는지를 비롯해 현장의 안전관리 실태를 수사할 예정이다.
김영록 전남도지사와 김재규 전남지방경찰청장도 현장을 방문해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주민의 피해 복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사고가 난 곡성에는 지난 5일부터 이날 오전 10시까지 513.3㎜의 많은 비가 내렸다.
글·사진 김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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