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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사회운동 산실 YMCA 100주년 맞아

등록 2020-10-06 14:56수정 2020-10-06 14:59

광주YMCA, 5~12일 100주년 기념 각종 행사 진행
일제 탄압에 맞선 청년들, 광주사회운동 조직 구성
1930년대 찍은 광주 와이엠시에이 청년 회원 모습. 광주와이엠시에이 제공
1930년대 찍은 광주 와이엠시에이 청년 회원 모습. 광주와이엠시에이 제공

일제강점기 항일운동부터 1987년 6월항쟁까지 광주·전남 사회운동 산실 역할을 한 광주 와이엠시에이(YMCA)가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광주 와이엠시에이 창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이달 5일부터 20일까지 100주년 기념주간으로 정하고 거리 전시, 포럼 등 다양한 기념행사를 연다”고 6일 밝혔다. 광주 와이엠시에이는 6∼20일 광주시 동구 금남로에서 진행하는 ‘100년을 지나온 광주YMCA 인물 거리전’을 시작으로 광주역사민속박물관의 ‘영맨, 광주를 움직이다’ 전시(10월14일∼12월13일), 한중일 3개국(광주·상하이·요코하마) 국제포럼(10일, 13일)과 ‘오방 최흥종 선생의 생애와 사상’ 특별세미나(15일) 등을 진행한다.

광주 와이엠시에이는 광주 근대화 역사와 함께했다.

1919년 광주에서 벌어진 세 차례 만세운동이 일제 탄압으로 기세가 꺾이자 이듬해 최흥종 목사를 중심으로 청년들은 기독교청년회를 만들었다. 광주기독교청년회는 농민 교육, 야학, 체육운동 보급 등 민족운동을 펼쳤다. 1930년대 후반 조선총독부의 신사참배 강요에 저항하다 1944년 12월 문을 닫은 뒤 광복이 되자 1945년 9월 재건됐다.

1928년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에 자리한 광주기독교청년회 건물. 광주와이엠시에이 제공
1928년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에 자리한 광주기독교청년회 건물. 광주와이엠시에이 제공

1980년 5·18민주화운동 때는 명노근 전남대 교수, 백영흠 목사, 윤영규 교사, 이광우 교수 등 지도부들이 항쟁에 참여했다가 신군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당시 와이엠시에이 강당은 시민군 훈련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5·18로 지도부, 회원 구속이 이어지며 한때 활동이 위축되기도 했지만 1984년 ‘전남민주청년운동협의회’ 창립에 구심점 역할을 하는 등 시민운동을 전개했고 1987년 6월 항쟁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100년 전 30여명으로 시작했던 회원 규모는 현재 5천여명으로 늘어났고 250여명의 임원진과 130여명의 직원이 활동하고 있다.

류한호 이사장은 “새로운 100년은 기후위기, 사회 갈등과 차별 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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