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찍은 광주 와이엠시에이 청년 회원 모습. 광주와이엠시에이 제공
일제강점기 항일운동부터 1987년 6월항쟁까지 광주·전남 사회운동 산실 역할을 한 광주 와이엠시에이(YMCA)가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광주 와이엠시에이 창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이달 5일부터 20일까지 100주년 기념주간으로 정하고 거리 전시, 포럼 등 다양한 기념행사를 연다”고 6일 밝혔다. 광주 와이엠시에이는 6∼20일 광주시 동구 금남로에서 진행하는 ‘100년을 지나온 광주YMCA 인물 거리전’을 시작으로 광주역사민속박물관의 ‘영맨, 광주를 움직이다’ 전시(10월14일∼12월13일), 한중일 3개국(광주·상하이·요코하마) 국제포럼(10일, 13일)과 ‘오방 최흥종 선생의 생애와 사상’ 특별세미나(15일) 등을 진행한다.
광주 와이엠시에이는 광주 근대화 역사와 함께했다.
1919년 광주에서 벌어진 세 차례 만세운동이 일제 탄압으로 기세가 꺾이자 이듬해 최흥종 목사를 중심으로 청년들은 기독교청년회를 만들었다. 광주기독교청년회는 농민 교육, 야학, 체육운동 보급 등 민족운동을 펼쳤다. 1930년대 후반 조선총독부의 신사참배 강요에 저항하다 1944년 12월 문을 닫은 뒤 광복이 되자 1945년 9월 재건됐다.
1928년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에 자리한 광주기독교청년회 건물. 광주와이엠시에이 제공
1980년 5·18민주화운동 때는 명노근 전남대 교수, 백영흠 목사, 윤영규 교사, 이광우 교수 등 지도부들이 항쟁에 참여했다가 신군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당시 와이엠시에이 강당은 시민군 훈련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5·18로 지도부, 회원 구속이 이어지며 한때 활동이 위축되기도 했지만 1984년 ‘전남민주청년운동협의회’ 창립에 구심점 역할을 하는 등 시민운동을 전개했고 1987년 6월 항쟁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100년 전 30여명으로 시작했던 회원 규모는 현재 5천여명으로 늘어났고 250여명의 임원진과 130여명의 직원이 활동하고 있다.
류한호 이사장은 “새로운 100년은 기후위기, 사회 갈등과 차별 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