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지역 고등학교 역사교사 재직 시절 김용근 선생.김용근선생기념사업회 제공
독립유공자이자 5·18민주화운동 유공자인 석은 김용근(1917∼1985) 선생의 제자들이 김 선생의 삶을 조명하는 학술대회를 처음으로 연다. 제자들은 이번 학술대회를 계기로 김 선생의 참전유공자 등록도 추진하며 우리나라에서 흔치 않은 3개 분야 유공자가 나올지 주목된다.
김용근선생기념사업회(이하 기념사업회)는 “국가보훈처와 함께 29일 국립광주박물관 강당에서 ‘석은 김용근 선생의 일제하 민족운동’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고 27일 밝혔다.
이번 학술대회는 김 선생의 제자들이 발표자로 나서 ‘평양 숭실학교와 김용근’(임선화 전남대 연구교수), ‘김용근 선생의 독립운동-신사회 그룹 활동’(은우근 광주대 교수), ‘김용근 선생의 마지막 수업’(임형칠 전 정광고 교장), ‘석은 김용근 선생의 일제하 재판기록 해제’(조현종 전 국립광주박물관장) 등 4개 주제발표와 토론으로 이뤄진다.
전남 강진에서 태어난 김 선생은 선교사들이 세운 목포영흥학교에서 영어, 기하, 음악 등 근대교과목을 배웠다. 1933년 평양 숭실학교에 편입한 그는 개방적인 평양 분위기 속에서 민족의식을 키웠고 1935년 12월 종교부장 신분으로 신사참배와 궁성요배(일왕 궁성 방향으로 하는 절)를 거부해 3개월간 경찰에 감금됐다. 1936년 도산 안창호를 만나 독립운동에 뛰어들었고 이듬해 전남 영광에서 교사생활을 하며 일제패망을 주장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해 10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1940년 연희전문학교로 진학한 김 선생은 1941년 성백우, 임형선과 비밀결사조직인 신사회를 만들고 총독암살을 계획해 1942년 체포, 징역 2년형을 받았다. 한국전쟁 중인 1951년에는 육군 제9사단에 입대했고 4년간 육군사관학교 생도를 대상으로 국사와 군사영어를 가르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김 선생은 1976년 전남고에 재직하며 유신반대 학생시위를 선동했다는 이유로 중앙정보부의 조사를 받고 교직에서 물러났다. 1980년 5·18 때는 윤한봉 등 지명수배된 제자를 숨겨준 혐의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1년6개월을 선고받았고 심근경색으로 1985년 운명했다.
김 선생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고 독립유공자가 됐고 2002년에는 5·18유공자로 추서됐으나 참전유공자는 기록이 부족해 등록되지 못했다. 기념사업회는 김 선생이 생전 지역 잡지와 한 인터뷰에서 “내가 종군했던 9사단은 연희학교 동창인 박병권이 사단장을 맡고 있었다”고 말한 점과 ‘1954년 육군사관학교로 김 선생을 찾아갔다’는 유족 증언을 토대로 관련 기록을 찾고 있다.
김양래 기념사업회 상임이사는 “이번 학술대회를 준비하면서 인터뷰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김 선생과 박병권 사단장 이름이 나온 연희학교 입학생 명단이 발굴됐다. 김 선생의 종군 기록을 보완해 참전유공자 등록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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