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5·18민주묘지 2묘역에서 고 정병균씨의 유족이 정씨 유해를 안장하고 있다.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평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5·18민주화운동유공자((<한겨레> 9월3일치 9면))가 뒤늦게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됐다. 5·18단체 회원들은 정씨처럼 홀로 고통에 감내하는 5·18유공자들이 더는 없도록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5·18민주화운동부상회 등 5·18단체 회원들은 3일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5·18민주묘지 2묘역에서 안장식을 열고 정씨의 유해를 안장했다. 이날 안장식에는 유족, 친구, 5·18단체 회원 등 20여명이 참석해 정씨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애초 정씨는 장례식이 끝난 9월 초 국립묘지에 안장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안장심사, 유족 일정 등을 고려해 이날 영면에 들어갔다. 정씨는 5·18유공자였으나 5·18단체에는 가입하지 않고 평생 혼자 지냈다. 정씨의 비보가 전해졌을 때 정씨를 아는 동료들은 드물었다. 하지만 정씨가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안타까움을 느낀 5·18단체 회원들은 십시일반 성금을 걷어 장례식을 치렀고 영면식까지 함께 했다.
5·18단체 회원들은 이번 영면식을 계기로 정씨와 같은 사례를 막기 위해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혼자 지내는 유공자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교류하고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5·18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유공자들도 지원하자는 방안이 나왔다.
정씨의 장례와 영면식을 주도한 이지현 5·18민중항쟁부상자회 초대회장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5·18유공자들이 혼자서 버티지 말고 5·18단체를 방문해 고통을 나눴으면 한다. 앞으로 5·18진상규명이 이뤄질 것이고 유공자들을 지원하는 법이 발의됐으니 희망을 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씨의 형 정종철씨는 “갑자기 동생의 비보를 듣고 혼자서 어떻게 장례를 치러야 할지 막막했다. 다행히 다른 5·18유공자들이 있어 동생의 마지막 길이 쓸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씨의 친구 김석호씨는 “평생 고생만 한 친구의 마지막 모습을 보니 울적하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씨는 어렸을 적 부모와 헤어지고 친형과도 떨어져 살던 중 1980년 5·18항쟁에 참여했다. 주검운반조로 활동했던 그는 5월27일 옛 전남도청을 지키다 붙잡혀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이듬해 1월 형집행면제로 풀려났다. 공무원 등 안정적인 직업을 얻기 위해 노력했으나 수감 기록 때문에 실패하고 건설업 일용직으로 생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매년 5월만 되면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죽은 동료들이 나를 부른다”며 트라우마를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씨는 외부와 단절한 채 지내던 중 9월1일 아침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김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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