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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의 추억’ 서린 ‘광주 백화마을’ 당산나무로 기억하다

등록 2020-12-15 18:39수정 2020-12-16 16:10

일제 때 조성된 학동 빈민 마을
‘공터 중심 8거리’ 기하학적 형태
해방 이후 백범 100채 건축 지원
2009년 재개발로 주민들 흩어져

올초 주민들 마을 당산나무 지키는
모임 꾸리고 ‘당산나무의 귀환’ 책도
지난 6월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주민들과 임택 동구청장이 당산나무 주변 거리청소를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 6월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주민들과 임택 동구청장이 당산나무 주변 거리청소를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땐 당산나무 밑에서 이웃끼리 정을 나눴지만 지금은 재개발로 사라져버린 광주 백화마을을 추억하는 책자가 나왔다. 백화마을은 ‘백 가구가 화목하게 살라’는 의미로 백범 김구 선생이 지어준 이름이다.

15일 광주광역시 동구청과 학동마을사랑채운영협의체의 말을 종합하면 학동 백화마을 주민들은 최근 <당산나무의 귀환>이라는 책자를 발간하고 공동체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한 여러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학동 백화마을은 일제강점기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1930년대 광주천 상류 직강화 정비공사를 하던 일본인들은 천변에서 살던 빈민들을 쫓아내고 인근(학동)에 정착하도록 했다. ‘갱생부락’이라고 이름 붙은 마을은 가운데에 있던 공터를 중심으로 팔(8)거리가 조성된 기하학적 형태였다. 중앙에서 빈민들을 감시하려는 의도가 숨어있었다. 해방 이후에도 가난 때문에 고향을 찾지 못한 동포들이 모여들며 학동은 빈민촌이 유지됐다.

1980년대 촬영한 광주 동구 학동 팔거리 항공사진.
1980년대 촬영한 광주 동구 학동 팔거리 항공사진.
1896년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복수로 황해도에서 일본인을 처단한 백범은 도망자 시절 광주에 잠시 머문 인연으로 1946년 9월 광주를 다시 방문했다. 당시 서민호 광주시장에게 학동 동포들의 어려운 사정을 들은 백범은 정치후원금을 모두 기부하며 5평(16㎡) 크기 집 100채를 세우고 ‘백화마을’이라고 부르도록 했다.

학동 백화마을은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골목문화가 살아있던 동네였다. 양팔을 뻗으면 닿는 골목 너비만큼 이웃들도 가깝게 지냈다. 하지만 재개발 열풍을 피할 수 없었고 2009년 800가구 규모 아파트가 들어서며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주민들을 다시 하나로 모은 건 수령 90년 된 당산나무(느티나무)였다. 올해 초 주민들 사이에 학2마을 휴먼시아 아파트 뒷길에 서 있던 당산나무가 10여년 전 아파트 공사 때 고가 사다리차에 부딪쳐 가지가 부러졌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 방치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마을활동가, 건물관리인, 자치위원, 통장 등으로 구성된 주민 12명은 지난 2월 ‘당산나무협의회’를 꾸리고 매달 두 번 모여 나무 치료, 주변 청소, 불법 주정차 근절 활동을 펼쳤다. 쓰레기를 내놓는 장소로 인식됐던 당산나무 주변은 협의회의 노력으로 꽃밭이 조성되기도 했다.

마을 중심 공터를 중심으로 팔거리가 조성됐던 2000년대 ‘백화마을’ 모습.
마을 중심 공터를 중심으로 팔거리가 조성됐던 2000년대 ‘백화마을’ 모습.
또 성금을 모아 마을 수호신 노릇을 해온 ‘당산나무’를 소재로 책자를 내기로 했다. 5개월 준비 끝에 지난달 나온 <당산나무의 귀환>(70쪽 분량)은 옛 사진과 지금 사진 100여장 위주로 80∼90대 어르신들이 당산나무와 얽힌 기억을 풀어놓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광주 동구 학동의 수령 90년 당산나무.
광주 동구 학동의 수령 90년 당산나무.
한국전쟁 때 공습이 닥치면 당산나무에 걸린 비상종을 울려 대피했던 일화부터 저녁 때면 나무 밑에서 음식을 나누던 풍경, 지금은 주차장이 된 나무 옆 보리밥집 등 잊혔던 이야기들이 실렸다. 협의회는 원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2집 발간을 준비하고 당산나무 문화제 등을 열어 백화마을 정신을 알린다는 계획이다.

책 발간에 참여한 마을활동가 손수철(64)씨는 “코로나19가 종식되면 당산나무가 있는 거리를 일정 기간마다 ‘차 없는 거리’로 만들어 다양한 행사를 하려고 한다. 앞으로도 학동은 꾸준히 변하겠지만 당산나무 이야기를 후대에 남겨 주민 간 소통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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