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도난당했다가 경찰이 회수한 얼굴 없는 천사의 기부금. <한겨레> 자료사진
해마다 찾아왔던 전북 전주 ‘얼굴 없는 천사’가 올해도 올까?
익명의 중년 남자는 지난 2000년부터 해마다 성금을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 주변에 놓고 가서 ‘얼굴 없는 천사’라 불렸다. 그러나 지난해 12월30일 고교 친구 사이인 30대 2명이 노송동주민센터 뒤편에 얼굴 없는 천사가 두고 간 기부금 6016만3510원을 훔쳐 달아난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들은 매년 연말에 전주에서 얼굴 없는 천사가 성금을 놓고 가는 것을 뉴스를 통해 알고 범행 당일 스포츠유틸리티차(SUV)에 대기하다가 범행했다. 그러나 이들을 수상하게 여겨 차량번호를 적어둔 주민의 제보로 4시간여 만에 붙잡혔다. 지난 6월 항소심에서 이들은 징역 1년6개월과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얼굴 없는 천사가 2000년부터 2019년까지 20년째, 21차례 기부한 금액은 모두 6억6850만4170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얼굴 없는 천사가 6천여만원의 기부금을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 주변 희망을 주는 나무에 밑에 놓고 갔다. <한겨레> 자료사진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 관계자들은 기대 반 우려 반으로 긴장하는 분위기다. 코로나19로 경제 상황이 위축된 데다가, 성금 절도사건 때문에 천사의 나눔이 끊어질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지난해 도난당한 기부금을 바로 되찾기는 했지만, 얼굴 없는 천사도 이 사건을 계기로 전달 방법에 신경을 쓰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한편 전주시는 얼굴 없는 천사의 숨은 뜻을 기리고 아름다운 기부문화를 널리 확산할 수 있도록 노송동주민센터 화단에 “당신은 어둠 속의 촛불처럼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참사람입니다. 사랑합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얼굴 없는 천사의 비’를 2009년 12월 세웠다. 시는 또 주변 도로와 마을을 각각 천사의 길과 천사마을로 이름 붙였다.
도난당한 기부금 전달식이 올해 1월2일 전주시청에서 열렸다. <한겨레> 자료사진
노송동 일대 주민들은 해마다 지속하는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을 본받자는 뜻에서 숫자 천사(1004)를 본떠서 10월 4일을 천사의 날로 정하고 불우이웃을 돕고 있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