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독재정권에 맞서 수차례 투옥되고 5·18 진상규명 투쟁에 앞장서는 등 한평생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강신석 목사가 5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3.
1938년 광주에서 태어난 강 목사는 한국신학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하며 목회자 길을 걸었다. 1963년 전남 해남군을 시작으로 무안, 목포 등에서 교회 목사로 재직했고 1978년 광주무진교회를 개척해 평생 몸담았다.
강 목사는 목회자 생활을 하면서도 독재정권에 탄압받는 국민을 외면하지 않았다.
1976년 3월1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윤보선, 김대중, 문익환 등 재야인사가 유신정권에 반대해 3·1 민주구국선언을 발표한 명동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지켜본 강 목사는 같은 해 8월10일 광주 양림교회에서 열린 한국기독교장로회 전남노회 임시노회 도중 임기준, 조홍래, 윤기석 목사 등과 함께 ‘3·1 구국선언' 성명을 발표해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 받고 이듬해 8·15특사로 석방됐다. 이 사건은 ‘제2명동사건’으로 불린다.
고인은 1979년 12월에도 군사독재 반대 성명을 발표해 계엄 포고령 위반으로 3년 형을 선고받고 이듬해 3월 출소했다.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이 전국 확대되며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땐 강 목사는 예비검속 수배명단에 포함돼 구속, 같은해 8월15일 석방됐다. 강 목사는 1996년 ‘5·18 학살자 재판회부를 위한 광주·전남 공동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아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을 처벌하기 위한 100만명 서명운동을 추진했다.
민주정권이 들어선 이후 강 목사는 사회, 교육운동으로 활동영역을 넓혔다.
1994∼1995년 광주 와이엠시에이 이사장, 1999년∼2001년 전남 담양군 한빛고등학교 이사장, 2003∼2004년 5·18기념재단 이사장, 2004∼2005년 조선대학교 이사장 등을 지냈다. 강 목사와 민주화운동을 함께 했던 이철우 5·18기념재단 이사장은 “강 목사님은 속정이 깊으면서도 괄괄한 성격이었다. 목회자 소명을 다 하시면서 비전향 장기수와 투옥된 민주화 인사들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고 말했다.
광주 종교·시민단체는 민주사회장으로 강 목사의 장례를 치를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혜영씨와 아들 의준, 의권, 의혁씨가 있다. 5·18민주유공자인 고인은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된다. 빈소는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8일 오전이다.
김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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