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가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방문해 희생자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국립5·18민주묘지관리소 제공
노태우(88)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55)씨가 3년째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5·18단체는 “노 전 대통령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먼저”라고 지적했다.
22일 국립5·18민주묘지관리소 등의 말을 종합하면 재헌씨는 전날 오전 11시께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30여분간 참배했다.
재헌씨는 ‘5·18 민주영령을 추모합니다. 제13대 대통령 노태우’라고 써진 조화를 분향소에 헌화한 뒤 윤상원·박관현·전재수 등 희생자 묘역을 둘러본 것으로 알려졌다.
재헌씨는 방명록에 “5·18 영령들을 마음 깊이 추모하며 광주의 정신으로 진정한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대한민국을 염원합니다”라고 썼다. 이후 광주 북구 오치동에 있는 노씨 문중 선산을 방문한 뒤 오후 6시께 서울로 돌아갔다. 앞서 재헌씨는 2019년 8월과 지난해 5월에도 5·18묘역을 참배했었다.
5·18단체는 재헌씨의 이런 행보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6월 5·18기념재단과 단체(유족회, 부상자회, 구속부상자회)는 공동 성명을 내어 “노씨의 가족들이 몇 번의 묘지 참배로 마치 5·18학살의 책임을 다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우리는 사죄와 반성을 바라는 것이지 노씨가 여전히 대통령이라는 이름으로 추모 화환을 보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참배 후 재헌씨와 만났던 이지현 5·18부상자회 초대회장은 “진정성을 보이려면 노 전 대통령이 구급차를 타고라도 광주에 와야 한다는 말을 건넸는데 노 전 대통령이 산소호흡기에 의존하고 있어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5·18 진상규명을 위한 자료도 요구했으나 특별한 게 없다고 했다. 재헌씨가 원망의 대상은 아니지만 노 전 대통령을 움직이려는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영훈 5·18유족회 회장은 “진정으로 오월 영령을 추모한다면 조용히 참배만 하고 돌아갈 것이 아니고 희생자나 유가족들과 대화를 해야 한다. 재헌씨의 행보는 광주 분위기를 떠보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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