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24일 계엄군의 송암동 학살을 경험한 박순자씨가 당시 상황을 회고하고 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길바닥에는 주검이 있제, 전기는 끊어져서 깜깜하제, 비는 부슬부슬 내리제. 내가 15살에 6·25 난리를 겪어봤는데 그날처럼 무서운 날은 없었소.”
지난달 광주광역시 남구 송암동에서 만난 주민들은 41년 전인 1980년 5월24일 계엄군의 총성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박순자(86·여)씨는 “오전에 군인 한 무리랑 장갑차 한대가 나주 쪽으로 갔다. 갑자기 총소리가 말도 못하게 들리면서 집 안으로 총알이 날아오더라. 남편과 아들 손주, 미처 자기 집으로 피신하지 못한 동네 주민 윤영화(당시 34살)씨랑 이불 뒤집어쓰고 발발 떨면서 있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총소리가 멎은 후 군인들이 문을 발로 차고 들어와서 우리 아저씨 목에 총부리를 들이댔다. 내가 겁이 없는 성격인데 ‘우리 아저씨는 주민이요. 죽이려면 나를 죽이쇼’라고 난리를 쳤다. 우리 아저씨는 놔줬는데 평소 쉰 목소리였던 윤씨는 ‘시위에 참여해 목이 쉬었다’고 의심받아 끌려갔다. 윤씨는 석달 뒤 골병이 들어서 돌아왔다”고 말했다.
1986년 손녀의 생일을 축하하며 찍은 박순자씨의 가족사진. 박씨의 집은 1980년 5월24일 계엄군의 사격으로 큰 재산 손해를 입었다. 박순자씨 제공
군인들이 물러난 집 안은 난장판이 돼 있었다. 화장실, 뒤주, 연탄보일러 등 사람이 숨을 만한 곳이면 어김없이 총알구멍이 나 있었다. 박씨가 바가지에 주워 담은 탄피만 35개였다. 집 앞길에는 시위대 주검 1구(신원 미상)도 놓여 있었다.
박씨는 “군인들이 가면서 전기와 전화를 끊고 갔다. 그날 밤에 촛불을 켜고 있는데 비가 왔다. 비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누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처럼 들려서 엄청 무서웠다”고 회상했다.
주민들을 상대로 한 군인들의 잔혹 행위는 공수여단의 분풀이에서 비롯됐다. 당시 광주비행장으로 철수하던 11공수여단과 송암동 야산에 매복하던 전교사 보병학교 교도대는 서로를 시민군으로 오인하고 사격을 벌여 11공수 제63대대 부대원 9명이 죽고 33명이 다쳤다.
조그만 가게를 운영했던 이옥희(73·여)씨도 “총소리가 나자 솜이불을 꺼내 남편, 10살 딸, 9살 아들, 5개월 된 막내아들과 덮고 누웠다. 총알이 쉴 새 없이 흙벽을 뚫고 들어왔다. 하도 정신이 없어서 딸, 아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도 못 했다. 총소리가 멎고 이불을 걷어보니 애들이 꼼짝하지 않고 누워 숨만 쉬고 있더라. 다행히 다친 데는 없었다”고 기억했다.
가게로 나가 보니 군인들이 날계란, 과자, 음료수, 말린 명태, 라면, 담배 등 온갖 물건을 다 가지고 갔지만 항의도 못 했다. 이씨 남편은 “목숨 건진 것만도 고맙게 생각해라”라고 했다.
이씨는 “밤에 비가 오는데 군인들이 문을 다 부숴놓고 전기도 끊고 가서 집에 있을 수 없었다. 인근 마을 아는 사람 집으로 비를 맞으며 기저귀 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걸어가는데 처량했다”고 말했다.
1980년 5월24일 광주 남구 송암동에서 계엄군이 오인사격 분풀이로 민간인을 사살하자 시민군을 집 안에 숨겨준 고 이백윤씨 모습. 문병림씨 제공
문병림(81·여)씨는 “그날 오전 갑자기 총소리가 들리면서 시위대 3명이 들어왔다. 시아버지(이백윤씨)가 ‘느그들 살라면 총을 감춰라’라고 말하며 받아주셨다. 총은 천장을 뚫어서 거기 숨겼다”고 기억했다. 그는 “이어 총소리가 그치고 군인들이 밖에서 ‘나와!’라고 했다. 시위대 3명은 손을 들고 나갔다. 군인들이 시위대 3명 중 한명을 총으로 죽인 후 길거리에 주검을 그대로 놔뒀다”고 했다.
63대대 출신 이경남 목사는 “그때는 부대 분위기가 폭력적이었으니까 일부 부대원이 애꿎은 민간인에게 분풀이했다. 소도 죽이고 약탈도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1980년대 광주 남구 송암동에 살았던 이옥희씨의 두 자녀. 이씨 가족은 1980년 5월24일 계엄군의 무차별한 사격을 경험했다. 이옥희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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