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18민주화운동 때 민중언론 <투사회보> 필경을 맡았던 고 박용준 열사.5·18기념재단 제공
41년 전 광주참상을 철필로 써 시민에게 알린 박용준(1956∼1980) 열사의 글씨체가 컴퓨터 서체로 되살아났다. 글꼴은 누구나 무료로 내려받아 쓸 수 있다.
5·18기념재단과 지역공공정책플랫폼 광주로, 광주 와이더블유시에이(YWCA), 들불열사기념사업회는 21일 5·18기념재단 오월기억저장소에서 ‘박용준 투사회보체 글꼴 발표회’를 열었다. 이날은 41년 전 민중언론 <투사회보>를 처음 만든 날이다.
광주시민단체는 <투사회보> 필경을 맡았던 박 열사의 글씨체를 컴퓨터 서체로 제작했다. 비용은 시민 모금으로 마련했는데 20일까지 189명이 1014만5천원을 기부했다. 제작은 `안중근체'를 개발했던 대구 ‘다온폰트’가 맡았다.
‘박용준체’는
5·18기념재단 누리집(
www.518.org) 등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5·18단체는 기념책자, 사적지 안내판 등에 `박용준체'를 활용할 계획이다.
시민단체가 개발한 컴퓨터 글꼴 ‘박용준체’로 복원한 민중언론 <투사회보> 7호.5·18기념재단 제공
임낙평 들불열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은 “글씨를 잘 썼던 박용준 열사는 유신정권 때 비판 성명서나, 자신이 다니던 와이더블유시에이신협 인쇄물 등을 자주 필경했다. 노래도 잘 불렀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글꼴 제작이 쉽지 않았을 텐데 참신한 기획을 진행한 광주시민단체와 시민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박 열사는 1978년 노동야학인 ‘들불야학’에 참여하며 시민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5·18이 일어나자 들불야학 동료들과 함께 광주참상을 보도하지 않은 기성 언론을 대신해 <투사회보>를 만들었다.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가 초안을 쓰면 박 열사는 철필로 등사지에 옮겨 적었다.
박 열사는 1980년 5월27일 <투사회보>를 제작했던 광주와이더블유시에이 건물을 지키다 계엄군의 총탄에 숨졌다. 박 열사의 이야기는 5·18 41주년 기념식 기념공연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박용준체'는 민주주의를 새롭게 열어갈 미래 세대들을 위한 오월의 선물”이라고 언급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21일 임낙평 들불열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이 5·18기념재단에서 열린 ‘박용준 투사회보체 글꼴발표회’에서 고 박용준 열사를 소개하고 있다.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