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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딸, 버스 타고 요양원 엄마 보러 가다가…”

등록 2021-06-10 15:26수정 2021-06-11 02:42

광주 건물 붕괴 사고 유족들 통곡
딸은 숨지고 아빠 중상…하교하던 고2학생도 떠나
아들 생일날, 집까지 두 정거장 남기고 떠난 엄마도
김부겸 국무총리가 10일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지역 철거건물 붕괴사고 유족을 위로하기 위해 기독교병원 장례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부겸 국무총리가 10일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지역 철거건물 붕괴사고 유족을 위로하기 위해 기독교병원 장례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엄마가 있던 요양병원에 가려고 아빠와 딸이 같은 버스를 탔어요. 중환자실에 있는 아빠가 딸을 찾고 있는데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지난 9일 아홉명의 생명을 앗아간 광주 학동 재개발지역 건물 붕괴사고로 가족을 잃은 이들은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10일 오전 광주 동구 조선대병원을 찾은 이아무개(60)씨는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온 조카를 생각하며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전날 이씨의 조카 ㄱ(30)씨는 그의 아버지와 함께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를 보러 54번 시내버스에 올랐다. 어머니는 석달 전 수술을 한 뒤 요양원에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부녀는 끝내 어머니를 마주하지 못했다.

이들이 탔던 버스 위로 건물이 내려앉으면서 조카 ㄱ씨는 숨졌고 그의 아버지는 중상을 입었다. 이씨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도 가계 부담을 줄이려 아르바이트도 하고, 가족도 잘 도와주던 너무 예쁜 아이였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번 사고로 숨진 희생자 9명 가운데 4명이 안치된 조선대병원 곳곳에서는 “이쁜 내 새끼 살려내라”,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등 애통한 절규가 흘러나왔다. 홀로 걷지 못할 정도로 오열하기도 했고,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통곡하는 가족을 유가족끼리 껴안으며 눈물을 닦아주는 모습도 보였다.

전날 숨진 채로 발견된 고등학교 2학년 ㄴ(18)군 할아버지는 “건물 붕괴사고 뉴스를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위에게 전화를 해봤는데, 집에 돌아올 시간이 지나도 손자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며 “지난주에 시골에 손자가 놀러 와서 봤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 큰 공사를 하면서 안전장치를 잘 설치해야 하는데 가림막만 쳐두고 진행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한탄했다.

함께 사는 아들의 생일상을 차려준 뒤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도 있었다.

광주지법 근처에서 곰탕집을 운영하던 ㄷ(65) 씨는 사고 당일 큰아들의 생일상을 차려둔 뒤 가게로 향했다. ㄷ 씨는 점심장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려고 버스에 올랐지만 집까지 두 정거장 남기고 끝내 내리지 못했다. ㄷ 씨 작은아들 조아무개(37)씨는 “지난 주말 마지막으로 본 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며 “늘 자상하고 인자한 어머니였다. 마음이 너무 아프고 눈앞이 캄캄하다”고 슬퍼했다.

광주 학동 전남대병원에 입원 치료 중인 ㄹ(72) 씨는 친구 두 명과 9일 오후 동구 운림동에 있는 무등산 둘레길에 가려고 54번 시내버스에 탔다가 변을 당했다. 이씨는 “시내버스 두 번째 좌석에 앉아 있다가 중앙 통로 쪽으로 걸어 나와 목숨을 건졌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함께 버스를 탔던 친구 두 명은 숨졌다. 다발성 늑골 골절로 치료를 받는 이 씨는 함께 산행길에 나섰던 친구가 숨진 것을 모르는 상태여서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사고 발생 뒤에도 수사기관 등에서 별다른 연락을 받지 못해 애를 태운 유가족도 있었다. 큰오빠 집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려고 54번 버스에 올랐다 숨진 채 발견된 ㅁ(64)씨의 작은 오빠 임아무개(68)씨는 “(붕괴사고) 뉴스를 보고 가족들이 전화를 했는데 연락이 안 됐지만, (수사기관 등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며 “조카들이 전날 병원을 뒤져 겨우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강재구 김용희 기자 j9@hani.co.kr

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의 한 철거 작업 중이던 건물이 붕괴, 도로 위로 건물 잔해가 쏟아져 시내버스 등이 매몰됐다. 사진은 사고 현장에서 119 구조대원들이 구조 작업을 펼치는 모습. 2021.6.9 연합뉴스
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의 한 철거 작업 중이던 건물이 붕괴, 도로 위로 건물 잔해가 쏟아져 시내버스 등이 매몰됐다. 사진은 사고 현장에서 119 구조대원들이 구조 작업을 펼치는 모습. 2021.6.9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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