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30일 전두환씨가 사자명예훼손재판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광주지방법원 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받은 전두환(90)씨의 항소심 재판이 시작됐다. 재판부는 전씨가 인정신문을 거부했지만 재판을 열어 유족의 반발을 샀다.
광주지법 제1형사부(재판장 김재근)는 14일 오후 2시 201호 대법정에서 전씨의 사자명예훼손사건 항소심 첫 공판기일을 열었다. 전씨는 지난달 10일 잡힌 첫 공판기일에 이어 오늘도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다시 정한 기일에 출정하지 아니한 때에는 피고인의 진술 없이 판결할 수 있다’고 한 형사소송법 365조 2항에 따라 전씨가 인정신문에 출석하지 않았어도 재판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검찰 쪽에서는 “365조 2항은 피고인 쪽 변론 없이 곧바로 선고할 수 있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향후 상고가 될 경우 인정신문 없는 재판 결과는 대법원에서 부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그동안의 대법 판례 등을 봤을 때 인정신문 없이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인정신문을) 검토해보겠지만 재판은 진행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날 공판에서는 검찰과 전두환 쪽 변호인이 항소 이유를 설명하고 증거 조사 계획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전씨쪽 변호인 정주교 변호사는 “1980년 5월21일 계엄군의 헬기사격을 인정하고 전씨에게 죄가 있다고 판결한 원심 재판부가 판단을 잘못했다. 직접 증거라고 인정한 증인 8명의 목격담도 신빙성이 없다. 원심판결 취소하고 다시 판단해달라”고 말했다.
검찰도 “1심에서는 1980년 5월27일 계엄군의 헬기사격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았다. 27일 사격은 21일 사격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 이 사건은 5·18 기간 전체를 놓고 고려해야 한다. 또 전씨는 1997년 판결이 확정됐지만 아직도 뉘우치지 않고 역사 왜곡을 시도해 죄질이 불량하다.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실형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5·18이 민주화운동인지를 다시 판단하는 자리가 아닌 만큼 헬기사격이라는 쟁점에 맞춰 재판을 진행하겠다. 증거 조사 신청 또한 쟁점에 맞춰서 받아주겠다”고 밝혔다.
재판이 끝난 후 5·18단체와 유족은 “재판 진행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반발했다. 조 신부의 유족 조영대 신부는 “재판부가 피고인도 출석하지 않았는데 똑같이 변론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 국민이 공정과 정의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도록 재판을 진행해달라”고 말했다. 다음 재판은 다음 달 5일 오후 2시 같은 법정에서 열린다.
앞서 전씨는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조비오 신부를 “신부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 쟁점은 5·18 당시 조 신부가 목격했다는 헬기 사격이 사실인지 여부다. 전씨 쪽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검찰도 “형량이 가볍다”며 항소했다.
김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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