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 광주고법·지법 전경. <한겨레> 자료사진
파키스탄에서 반정부시위를 하다 정부의 박해를 피해 한국에 온 파키스탄 가족을 난민으로서 인정하는 항소심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1심에서는 이들의 피해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난민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다.
18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 등의 말을 종합하면 광주고법 제1행정부(재판장 최인규)는 10일 파키스탄 출신 ㄱ씨 가족이 광주출입국·외국인사무소장을 상대로 낸 난민 불인정 처분 취소 소송에서 1심을 뒤집고 ㄱ씨 가족의 손을 들어줬다.
ㄱ씨는 2013년 3월 파키스탄의 한 정당에 가입해 시위에 참여하는 등 반정부 활동을 했다. 이에 파키스탄 경찰은 2015년 3월 ㄱ씨를 납치한 후 고문하며 정당 활동을 그만두라고 협박했다. 당시 ㄱ씨는 오른쪽 갈비뼈에 고무총알을 맞고 갈비뼈 두 개가 부러졌으며, 다리와 배를 심하게 다쳐 병원에 89일간 입원했다. 남편과 함께 시위에 참여했던 ㄱ씨의 부인 또한 정부로부터 “정당 활동을 그만두라”고 협박당했다.
파키스탄 테러방지 특별법원은 ㄱ씨에 대해 ‘종교적, 종파적 또는 열렬한 증오심을 선동·협박’ ‘종교적 믿음에 대한 모욕’ ‘평화 위반을 유발하는 모욕’ ‘명예훼손’ 혐의를 들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ㄱ씨는 같은 활동을 하다 체포됐던 동료들이 수십 년의 징역형이나 사형을 선고받자 2015년 10월 단기상용 체류자격(C-3)으로 한국에 왔고 부인과 자녀도 이듬해 6월 동반 체류자격(F-3)으로 한국에 입국했다. ㄱ씨 가족은 본국으로 돌아가면 신체적인 위협을 받거나 징역형이나 사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며 2016년 7월1일 광주출입국·외국인사무소에 난민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ㄱ씨 가족 3명은 2017년 11월 법무부에 이의신청을 했다. 2018년 3월에는 둘째가 태어났다. 그러나 법무부는 2018년 11월 ㄱ씨 가족 3명에 이어 2019년 4월 ㄱ씨의 둘째 자녀마저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ㄱ씨는 곧바로 광주지법에 난민 불인정 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ㄱ씨 가족의 진술이 각기 달라 주장을 믿기 어렵고,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파키스탄 사법제도를 통해 보호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해를 받을 수 있다고 느낄 만한 공포가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앞서 2013년 대법원은 난민 인정 요건에 대해 ‘난민인정 신청을 하는 외국인은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가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고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판단했다.
ㄱ씨에 대한 감금·고문 사실과 체포영장 발부, 출국 경위 등을 고려하면 그의 주장은 당시 파키스탄의 사회적·정치적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보인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 파키스탄 법정이 지난해 1월 소수정당 지지자 86명에게 55년 형을 선고한 상황에서 ㄱ씨에게 발부된 체포영장이 유효하기 때문에 ㄱ씨가 파키스탄으로 송환되면 곧바로 체포돼 중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항소심 재판부는 “ㄱ씨는 정부 인사로부터 협박과 신체적인 위협을 받아 파키스탄으로 돌아가게 되면 다시 생명과 안전이 위태로운 상태다. 원고들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은 1심은 판결은 취소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또 가족 결합 원칙에 따라 부인과 자녀 2명에게도 난민 지위를 부여할 인도적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한편, 법무부 통계를 보면 올해 3월 기준 광주에 사는 난민은 모두 6명, 난민 신청자는 808명, 난민 자격은 인정받지 않았지만 인도적으로 체류를 허용한 외국인은 78명이다.
김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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