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당시 미군정이 진행한 재판에 대해 대한민국 법원이 다시 판단하기로 했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장찬수)는 4·3 당시 일반재판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34명 가운데 33명에 대해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고 15일 밝혔다. 당시 유죄 판결을 받기 전 숨진 청구자는 공소기각됐다. 이번 재심 대상에는 해방 이후 미군정 시기 미군이 판사로 참여한 이른바 군정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피해자도 포함됐다.
재심 개시가 결정된 33명은 4·3사건의 도화선이라고 불리는 1947년 3·1사건과 1948년 4·3의 전개과정에서 군·경에 체포돼 포고2호 및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혐의로 일반재판에 넘겨져 수형 생활을 하거나 벌금형을 선고받은 이들이다. 이들 가운데 생존자는 고태명(90)씨가 유일하고, 나머지 재심 대상자는 유족이 대신 참가했다.
1945년 9월7일 태평양방면미군총사령관 맥아더 장군 명의로 된 포고 제2호는 “보안을 해친 자, 공중 치안 질서를 교란한 자 등은 점령군(미군)의 군법회의에서 유죄로 결정한 후 사형 또는 엄벌에 처한다”고 명시했으며, 3·1사건 관련자들은 대부분 이를 근거로 검거됐다.
이번 재심 개시 결정을 두고 재판부는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당시 태평양미국육군총사령부 산하 재판기관에서 군인이 미국 육군에게 적용되는 절차에 따라 심리하고 선고한 재판이라는 점에서 다른 4·3 재심청구사건과 구별된다. 대한민국 법원이 이 재판에 대해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미군정 재판에 대해 △한국인 경찰과 검찰이 군정재판을 받고 형이 확정된 한국인에 대해 전과기록을 수집했고 △군정재판을 받은 한국인에 대해서도 당시 적용되던 구 형사소송법에 정한 사유가 있을 경우 형의 집행정지 등 필요한 조처를 하라고 명령했으며 △1947년 4월14일 당시 남한을 관할하던 미군정청으로부터 3·1사건 관련 군정재판을 한국인 재판소로 이관하라는 명령이 있는 점 등을 들어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1955년 5월 당시 대법원이 “미군정에서 한국에 현실적으로 정권 이양을 완료할 때까지 미군정청이 당시의 유효한 법령에 의하여 한 법령과 행위는 대한민국 헌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는 이를 승계 인수하게 되었다”고 판결한 사례와 2021년 1월 미군정이 공포한 법령도 제헌헌법에 따라 대한민국의 법질서 안으로 편입됐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도 고려했다.
앞서 지난해 3월23일 전면 개정된 제주4·3특별법 제14조(특별재심)에는 희생자로서 4·3사건으로 인해 유죄의 확정판결을 선고받은 사람, 수형인 명부 등 관련 자료로서 위와 같은 사람으로 인정되는 사람은 형사소송법과 군사법원법에 불구하고 제주지법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재판부는 “군정재판을 받은 경우에도 수사절차에서 당시 적용되는 인신구속에 관한 형사 절차를 위반하거나 폭행, 고문 등 가혹 행위가 이뤄진 경우에는 재심 이유로 삼아야 할 수 있다고 본다”며 “이는 인류의 보편적인 정의이자 불변의 가치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재심 개시 요건은 엄격하게 살펴야 하지만, 사건이 발생한 후 70년이 넘는 과거의 일에 관해 재심 이유를 엄격하게 따질 경우 재심제도의 필요성이나 정의의 관념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특별재심 미군정 때 군정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이 포함되면서 앞으로 재심 청구가 잇따를 전망이다.
또 이번 재심 개시 결정에서는 청구 자격 논란이 됐던 4·3 피해자 조카의 청구 자격도 4·3특별법 개정 취지에 맞춰 정당한 청구 자격을 갖는 직계존비속이 없으면 가장 가까운 유족이 청구 자격을 가질 수 있다고 판단해 인정했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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