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지역 4개 대학 총학생회와 제주4·3평화재단이 운영하는 대학생 자원봉사단체인 ‘동백서포터즈’가 합동으로 지난달 27일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표석 구역에서 4·3추념일을 앞두고 표석을 정비하고 조화를 꽂고 있다. 허호준 기자
제주4·3 희생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4·3특별법 일부 개정안이 오는 12일 시행된다. 이에 따라 6월부터 신청 접수에 들어가, 올해 안에 사망 및 행방불명자에게는 9천만원, 후유장애인과 수형인은 총리실 산하 제주4·3위원회(이하 중앙위원회)가 결정한 금액(9천만원 이하)이 지급된다. 금고 이상의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받은 경우에도 중앙위원회 검토를 거쳐 4500만원 이하 보상금이 주어진다.
희생자 보상금 문제는 4·3 문제 해결의 가장 어려운 과제 가운데 하나였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4·3특별법 제정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에야 보상금 지급이 가시화됐다.
중앙위원회가 2002년 11월부터 현재까지 결정한 희생자 및 유족은 모두 9만8917명으로 제주도 인구(69만7718명) 14%에 이른다. 희생자(사망자·행방불명인·후유장애인·수형인)가 1만4577명, 유족이 8만4340명이다.
■ 보상금 신청 기간과 절차
희생자의 보상금 신청 기간은 6월1일부터 2025년 5월31일까지 3년이다. 지급은 올해부터 2026년까지 5년 동안 이뤄진다.
신청은 도내 거주자는 행정시와 읍·면·동 주민센터에 하면 된다. 도외 및 해외 거주자는 제주도청에 신청할 수 있다. 대상자는 전담 창구에 신청서류(신고서)와 함께 희생자를 기준으로 발급받은 제적부를 제출해야 한다. 제주도는 신고서가 접수되면 청구권자가 맞는지 사실조사를 진행한다.
도는 이 과정에서 상속권자 여부와 상속지분을 명확히 하기 위해 제적등본과 가족관계증명서를 활용해 희생자별 ‘가계도’ 표를 작성한다. 이어 제주도와 상속권 전문 법무사·변호사 등이 이를 검토한 뒤 4·3실무위원회 심의→중앙위 보상분과위원회 사전검토→중앙위 심의·결정의 과정을 밟는다. 보상금이 결정되면 실무위는 신고인에게 결정서를 통지한다. 보상금은 미리 제출된 개별 계좌에 상속지분에 따라 입금된다.
■ 보상금 청구권자와 지급 순서
보상금 청구는 생존 희생자의 경우 본인이 직접 청구하고, 희생자가 사망 또는 행방불명된 경우엔 민법상 상속권자라면 유족 결정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든지 청구할 수 있다. 또 제적부 및 가족관계등록부가 없는 희생자는 4·3특별법에 따라 유족으로 결정된 사람 가운데 민법에 따른 상속권자 등이 청구할 수 있다.
단 유족의 배우자는 유족이 숨진 뒤 재가하지 않아야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희생자 아들이 사망하고, 며느리가 재가하지 않은 경우에는 며느리가 민법상 상속권자가 돼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다른 상속권자들이 연락이 안 돼 신청하지 않을 경우, 신청자가 대신 이들의 상속분을 받을 수 없고 신청자 자신의 개별 상속분만 받게 된다.
자녀와 손주가 청구권이 있는 경우를 보여주는 가계도(예시). 제주도 제공
보상금은 생존 희생자, 희생자 결정 순서대로 지급된다. 올해 안에 보상금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는 생존 희생자는 현재 109명이다. 또 2002년 11월 결정된 희생자들을 시작으로 희생자 결정 순서대로 1800명가량이 올해 보상금을 받을 전망이다. 정부는 보상금 지급을 위해 1차 연도인 올해 예산 1810억원을 편성했다
■ 보상금 지분 사례마다 달라
보상금 상속은 민법 규정을 따른다. 희생자의 생존 배우자와 직계비속인 자녀가 상속 1순위이고, 2순위는 직계존속, 3순위 형제자매, 4순위 4촌 이내의 방계혈족이다.
법정 상속 비율은 배우자가 1.5, 자녀는 1이다(사진). 희생자 보상금이 9천만원이고 희생자의 배우자(1.5)와 자녀 4명(4)이 있다면 배우자의 상속지분은 5.5분의 1.5(27.2%)로 2448만원이며, 자녀들은 각각 5.5분의 1(18.2%)인 1638만원씩 받게 된다.
할아버지가 희생자인데, 아버지 형제자매 3명 가운데 2명은 생존하고 1명이 사망했다면, 생존한 아버지 형제 2명은 3분의 1씩 지분이 있다. 사망한 1명이 자녀 3명을 뒀다면 이들 자녀는 아버지 몫(3분의 1)의 3분의 1씩을 나눠 갖게 된다. 9천만원이 지급된다면 아버지 형제 2명은 3천만원씩, 손자 3명은 1천만원씩 받게 되는 셈이다. 희생자의 배우자와 자녀가 사망해 손자·증손자로 대습상속할 경우 상속지분은 몇십분의 1이 될 수 있다. 도는 희생자 1인의 상속권자가 증손자까지 최대 76명인 경우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희생자가 미혼이며 자녀가 없이 사망했다면 직계존속, 형제자매, 4촌 이내 방계혈족 순으로 보상금이 상속된다. 도는 현재 무호적 희생자를 829명으로 추정하고, 이 가운데 유족이 있는 무호적 희생자는 274명으로 집계했다. 상속권자가 없어 보상금을 받을 수 없는 희생자는 2800여명에 이른다.
제주지역 4개 대학 총학생회와 제주4·3평화재단이 운영하는 대학생 자원봉사단체인 ‘동백서포터즈’가 합동으로 지난달 27일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표석 구역에서 4·3추념일을 앞두고 표석을 정비하고 조화를 꽂고 있다. 허호준 기자
■ 시급한 가족관계등록부 정리
보상금 지급이 가시화됐지만, 유족 지위를 갖지 못한 유족도 있다. 제주4·3유족회가 지난해 8~11월 제주4·3연구소와 공동으로 ‘4·3 희생자의 가족관계등록부 불일치’ 실태를 조사해 호적 불일치 사례 79건을 확인했다. 4·3 당시 가족이 몰살당하거나 부모가 희생되면서 살아남은 어린 자녀들이 조부모나 아버지의 형제, 친척 등의 자녀로 입적한 사례들이다. 이 경우 희생자의 자녀가 호적엔 희생자의 형제나 조카로 오르고, 심한 경우 성이 다른 친척이 되기도 했다. 이런 유족들은 가족관계를 정정하지 않으면 친생자라도 보상금 청구 대상에서 제외된다.
제주4·3연구소 쪽은 “79건은 석달 새 조사에서만 확인된 것이고, 실제 호적 불일치 사례는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돼 이에 대한 조사와 바로잡기 위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상속권자가 없는 희생자에 대해서도 국가가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한 추모와 기념사업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4월 초 실태조사와 개선방안, 입법 조문 등에 대해 6개월짜리 용역을 발주해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강민철 제주도 4·3지원과장은 “희생자 유족이면서 유족이 되지 못하는 아픔을 없애기 위해 유족회와 함께 지속해서 사례를 수집하고, 가족관계등록부가 사실대로 작성·정정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지난 1월부터 공무원 110명과 조사요원 121명으로 사실조사단을 구성해 희생자별 상속 청구권자 확인을 위한 전수조사 등 피해회복 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