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서귀포시 제주헬스케어타운 안에 있는 녹지국제병원 건물.
제주도가 국내 첫 영리병원으로 추진된 제주 녹지국제병원을 허가할 때 내건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은 위법해 무효라는 1심 판결이 나왔다.
제주지법 행정1부(재판장 김정숙)는 5일 중국 녹지그룹 자회사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녹지제주)가 제주도를 상대로 낸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조건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제주도가 녹지제주 쪽에 내국인 진료 금지를 조건으로 달아 영리병원 개설을 허가했으나 이와 관련한 법적 근거가 없어 제주도의 조건부 허가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녹지제주는 서귀포시 제주헬스케어타운 2만8000㎡에 800억원을 투입해 2017년 7월 병원을 완공하고, 그해 8월 제주도에 외국의료기관인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를 신청했다.
원희룡 지사 시절인 지난 2018년 12월5일 제주도는 ‘진료 대상자를 외국인 의료 관광객으로 제한’하는 조건을 붙여 국내 첫 영리병원 개원을 허가했다. 당시 도는 제주특별법에 따라 개설된 외국의료기관에 대해서는 제주특별법이 우선이어서 조건부 개설 허가가 가능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녹지제주 쪽은 2019년 2월 현행 의료법은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도록 하고 있고, 특히 응급환자를 거부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는 규정 등을 들어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이 법령에 근거가 없고 영업의 자유 등을 침해해 위법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도는 녹지제주 쪽이 조건부 개설 허가 이후 3개월이 지나도록 개원하지 않자 의료법 규정을 들어 2019년 4월 청문 절차를 거쳐 병원 개설 허가를 취소했다.
이에 녹지제주 쪽은 같은 해 5월 도를 상대로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 취소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1월13일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녹지제주 쪽이 내국인 진료 제한 취소 소송에서도 최종 승소하면 영리병원 개설을 재추진할 수 있다.
도는 “판결문을 받으면 각 사안에 대해 분석해 향후 대응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제주지법 앞에서는 의료영리화저지 제주도민운동본부가 침묵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재판이 끝난 뒤 “현재 영리병원 설립을 제한하는 내용의 제주특별법 개정안이 발의됐기 때문에 앞으로 영리병원 취소를 위한 도민 의견을 모아 정부에 전달하는 등 영리병원 반대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도는 이번 소송과 별개로 녹지제주 쪽이 최근 병원 건물과 터를 국내법인에 매각해 ‘제주도 보건의료 특례 등에 관한 조례’가 규정한 외국인 투자비율(50% 이상) 요건을 충족시킬 수 없게 됐다며 병원 개설 취소 절차를 밟고 있다. 도는 조만간 보건의료 전문가와 보건의료단체, 시민단체 대표 등으로 구성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외국의료기관 허가 취소 여부를 심의할 예정이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