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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재판부의 이례적 당부…“갈 길 멀어 관심과 지지 부탁드린다”

등록 2022-05-03 15:15수정 2022-05-03 16:47

제주4·3 군법법회의 수형인 20명 ‘전원 무죄’
“누구나 모르는 사이 억울한 일 당할 수 있어”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표석. 허호준 기자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표석. 허호준 기자

“어느 순간에 내가 걸리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당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주4·3 당시 대정면장이었던 아버지(김상화)가 군사재판을 받고 행방불명된 4·3 희생자 유족 김승태(88)씨를 향해 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가 3일 한 말이다. 정 부장판사는 이날 ‘4·3 수형인’ 20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이 일어난지 74년 만이다. ‘4·3 수형인’은 제주4·3 당시 군법회의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수형 생활을 하다 행방불명된 이들을 가리킨다. 이날 재판은 광주고검 산하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의 직권재심으로 청구한 재판이어서 ‘무죄’ 선고가 예상됐다.

직권재심 합동수행단 변진환 검사는 이날 “이념과 공권력의 이름으로 불법행위가 자행됐고, 유족들은 수십년 동안 통한의 세월을 보냈다. 이번 판결 결과로 유족들의 아픔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며 “피고인들은 증거가 전혀 없어 피고인 모두에게 무죄를 요청한다”고 말했다.

재판장은 “형사재판에서는 피고인들의 죄는 의심의 여지없을 정도로 증거가 명확해야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증거가 없다. 이번 사건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며 무죄 선고 취지를 밝혔다. 재판장은 이어 “앞으로도 명예회복이 돼야 할 일이 많다. 갈 길이 멀고 많이 남아있다. 유족뿐 아니라 4·3사건과 관련해 끊임없는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린다”는 말을 남겼다.

재판장은 참석한 4·3 수형인들의 유족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며 발언 기회를 줬다. 귀가 어두워 보청기를 끼고 마이크를 잡은 유족 김승태씨는 “면장이었던 아버지가 끌려갔을 때 15살이었다. 경찰지서장 민보단장과 함께 치안 책임자로 마을을 돌아다니며 치안 유지 활동을 벌이다 어느날 갑자기 같이 일하던 사람들에 의해 잡혀가 고문을 받고, 군법회의에 넘겨져 육지 형무소로 간 뒤 행방불명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자식된 입장에서 너무나 분하고, 억울하고 화가 난 채로 지금까지 살아왔다”며 아버지의 무죄를 요청하고 선고해준 검찰과 변호인, 재판부에 감사를 표시했다.

재판에 참석한 또 다른 유족 김석두(78)씨는 5살 때 일가족 모두를 잃은 이야기를 전했다. 목소리는 흔들렸다. 17살 형은 행방불명됐고, 아버지는 마을 주민 20여명과 함께 희생됐다. 한 달 여 뒤에는 어머니와 할머니, 작은 어머니가 총살됐다. 김씨와 11살 형도 함께 끌려가다 “빨리 숨으라”는 어머니의 말에 숨어서 살았다. “형이 행방불명된 사실도 모르고 20여년을 살았어요. 수소문 끝에 목포형무소에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는데 인천형무소로 갔다는 말을 듣고 다시 인천으로 찾아갔어요. 그곳에서 병사했다는 기록을 봤습니다. 17살에 잡혀가서 19살에 돌아가셨습니다. 지금까지 힘이 없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명예회복을 하게 해 줘 감사드립니다.”

재판장은 “감사하다고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당연한 겁니다. 감사하다는 말은 상대방이 호의를 베풀었을 때 하는 말이고, 당연한 일을 했을 때는 감사하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김씨를 위로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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