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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남아도는데 어째요”…제주 태양광 과잉에 ‘블랙아웃’ 우려

등록 2022-05-11 18:27수정 2022-05-12 00:18

10년간 태양광 발전 120배 폭증
전력소요 적은 시간대 과부하 우려
남아도는 전기에 신재생 출력 제한
사업자들 불만에…도 “대책 강구중”
제주도내 태양광 발전시설이 급증하면서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강제로 발전시설을 멈추는 출력제어가 발생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제주도내 태양광 발전시설이 급증하면서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강제로 발전시설을 멈추는 출력제어가 발생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김기환(61)씨는 2020년 초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에 있는 2500평 규모의 감귤원 터 일부에 98㎾ 규모의 태양광 발전시설을 들였다. 적금과 은행 대출 등으로 마련한 1억8천만원을 쏟아부었다. 그해 8월부터 매달 250만원 정도의 수입이 생겼다. 이보다 쏠쏠한 노후 연금이 없다는 생각에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이런 김씨에게 최근 걱정거리가 생겼다. 태양광 시설 과잉으로 전력이 남아돌자 제주도가 민간사업자들의 전력 생산을 일시적으로 중단시키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어서다. 김씨는 “이러다 투자금도 회수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불안해 했다.

‘재생에너지 메카’ 제주도가 설비 과잉으로 발전량이 늘면서 전력망 과부하로 인한 대규모 정전사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제주도는 2012년 ‘탄소 없는 섬 2030’ 비전을 통해 2030년 풍력 2350㎿, 태양광 1411㎿, 연료전지 520㎿ 등 모두 4311㎿의 신재생에너지 보급목표를 세우고 정책을 추진해왔다. 이후 중앙정부 차원의 태양광 보급 사업이 확대되면서 제주지역의 태양광 발전시설 보급도 급증했다. 원희룡 지사 취임 3년차인 2016년에는 농사를 짓지 않는 감귤밭이나 임야 등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하는 ‘태양광 전기농사’ 프로젝트도 가동했다.

이런 정책에 힘입어 제주도내 태양광 발전시설 허가 누적 건수와 허가용량은 2012년 17건(14.9㎿)에서 지난 2월 2080건(716.6㎿)으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10년 만에 허가 건수는 122배, 허가용량은 48배나 급증했다. 같은 기간 풍력발전 누적 허가 건수와 용량도 2012년 15건(141.5㎿)에서 지난 2월 말 현재 29건(424.6㎿)으로 늘었다. 덕분에 재생에너지 시설이 제주지역 전체 전력설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전국 최고 수준인 38.9%로 늘었다.

문제는 발전량 급증으로 전력망에 과부하가 걸릴 위험이 커졌다는 데 있다. 전력 수요가 적은 시간대에 풍력·태양광 발전시설에서 전력공급이 급증하면 제주 지역의 다른 발전 시설의 출력을 최소로 낮춰도 제주도 전체 전력망에 과부하가 걸려 대규모 정전사태(블랙아웃)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형편이다. 이 때문에 한전과 전력거래소는 이미 몇차례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을 강제로 멈추는 ‘출력제어’를 시행한 바 있다. 출력제어 조치 가운데 민간발전소의 태양광 출력 차단은 마지막 단계로, 지난해 10월 처음으로 한차례 시행한 뒤 올해 3월에 2번, 4월 11번으로 급증했다.

지난 4일 한전 주최로 열린 태양광 발전 출력제어 설명회에 참가한 민간발전사업자들이 출력제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지난 4일 한전 주최로 열린 태양광 발전 출력제어 설명회에 참가한 민간발전사업자들이 출력제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강제적인 발전 중단 조치가 잇따르자, 수입이 불안정해진 민간사업자들이 집단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4일 한전이 마련한 출력제어 설명회에 참석한 대한태양광발전사업자협회 회원들은 “정부와 제주도가 도내 전력 수요와 공급에 대한 기술적 검토를 소홀히 해 재생에너지 인허가를 남발했다”며 출력정지에 따른 보상안 마련과 책임자 문책을 요구했다. 현재 제주지역에서 가동 중인 민간발전소 1500곳 가운데 출력제어 대상은 시설규모가 500㎾가 넘는 250여곳이다.

사정은 풍력발전도 다르지 않다. 2015년부터 올해 4월까지 263회나 출력제어가 이뤄졌다. 제주에너지공사 등 6개 풍력발전사업자가 지난해 ‘제주 풍력발전 출력제약 판매손실 보전위원회’를 꾸린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2021년 3월 기준 65억원의 손실액이 발생해 발전사들의 경영악화로 이어지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제주도내 설치된 풍력발전단지. 허호준 기자
제주도내 설치된 풍력발전단지. 허호준 기자

민간사업자들의 불만이 폭주하자, 한전과 전력거래소는 과부하를 막기 위한 태양광 전력변환장치(인버터) 성능 개선과 재생에너지 수용량 확대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 나서는 한편, 공공 태양광 시설의 자발적 출력 제한을 요구하고 있지만 한계가 뚜렷하다. 고윤성 제주도 저탄소정책과장은 “전기사업법에 따르면 태양광 발전시설은 일정 요건만 갖추면 막을 방법이 없고, 출력제어에 따른 손실보상을 할 수 있는 제도 역시 마련되지 않았다”며 “출력제한을 줄이면서 전력공급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모델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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