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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왕벚나무는 우리 역사”…제주 가로수 벌채에 분노한 할머니들

등록 2022-05-17 16:51수정 2022-05-17 17:11

일제 수탈·개발 역사에 밀려난 뒤 마을 형성
왕벚나무 12그루 ‘제성마을’ 기념해 심었는데
제주시, 도로확장 위해 무단벌채…주민들 반발
제성마을 양 할머니가 17일 제주시청 앞 구실잣밤나무 아래서 주민과 문화예술들이 함께하는 집회를 보고 있다.
제성마을 양 할머니가 17일 제주시청 앞 구실잣밤나무 아래서 주민과 문화예술들이 함께하는 집회를 보고 있다.

“꽃이 필땐 꽃이 아름답고, 한여름이 돼 이파리가 무성해지면 그늘져서 그 길로 오일장을 다녔어. 시내버스에서 집에 가려고 내리면 왕벚나무 그늘이 그렇게 시원했지. 그런데 그걸 하루아침에 베어버린 게 말이 돼?”

17일 오전 제주시청 앞에서 제성마을 왕벚나무 대책위원회와 ‘시민모임 낭시그레가게2’가 마련한 ‘제성마을 왕벚나무 살려내라’는 공동집회에 나온 양아무개(87)할머니는 이렇게 말하며 행정당국의 도로 확장을 위한 나무 벌채에 분노하고 있었다.

제주시가 신광교차로~도두 간 도로 확장 사업을 하면서 제성마을 주민들이 마을을 만들면서 심어놓은 왕벚나무 12그루를 지난해 8월과 지난 3월 베어내면서 주민들의 싸움은 시작됐다. 1981년 설촌한 제성마을 주민들에게 왕벚나무는 마을의 역사와 애환을 기억하는 나무들이었다. 1981년께 5~10년생 정도 되는 왕벚나무를 한라산에서 옮겨와 심었다.

가로수를 베어냈다고 주민들이 반발하며 나선 것은 전국적으로 이례적인 일이다. 문화예술인들도 주민들과 뜻을 같이했다. 오승국 시인은 “울지 말아요. 할머니. 새싹은 다시 아름드리나무로 자랄 거예요”라는 시로 분노한 주민들과 할머니들을 위로했다. 1인 마당극 공연도 이어졌다.

17일 제성마을 왕벚나무 대채위원회와 시민모임 낭싱그레가게2가 마련한 집회에 나온 삽과 곡괭이 등은 40여년 전 왕벚나무 식재에 사용했던 농기구들이다. 허호준 기자
17일 제성마을 왕벚나무 대채위원회와 시민모임 낭싱그레가게2가 마련한 집회에 나온 삽과 곡괭이 등은 40여년 전 왕벚나무 식재에 사용했던 농기구들이다. 허호준 기자

대책위는 △무단 벌채에 대한 안 시장의 공개 사과 △벌채한 왕벚나무와 동종의 나무 또는 그 정도 수령의 왕벚나무 식재 등을 요구한다. 오면심 대책위원장은 지난 13일 안동우 제주시장과의 면담 사실을 언급하며 “시청 쪽이 이번 주 안으로 서면으로 (요구에 대한) 답변을 준다고 했다. 답변 내용에 따라 대응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일제의 수탈과 제주 개발에 쫓긴 끝에 제성마을에 정착했다. 집회가 열리는 시청 정문 앞 연둣빛 녹색으로 뒤덮인 구실잣밤나무 그늘에 작은 배낭을 메고 앉아 있던 양 할머니도 그중 한 명이다.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양 할머니의 삶은 일제 강점기와 4·3을 겪고 제주 개발의 역사와 함께했다.

일제는 중국 침략의 전진기지로 제주도를 군사기지화 했다. 일본군은 다끄네에서 몰래물(사수동)에 이르는 곳에 정뜨르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을 만든다며 주민들의 농지를 빼앗고 쫓아냈다. 비행장은 이후 계속 확장됐다. 이 과정에서 양 할머니네 농토도 강제수용됐다.

“아버지한테 16마지기 농지가 그때 수용됐다고 들었어. 지금 공항 관제탑이 있는 자리가 우리 땅이었지. 16마지기면 2400여평 정도 돼. 그거 수용되고 돈은 얼마 받지도 못했어. 우리 남편네도 1050평 정도 되는 땅이 그때 일본군한테 수용됐어.”

도로 확장 이전 제주시 제성마을 왕벚나무들(위)과 확장 이후 잘려나간 뒤 모습(아래). 카카오 로드뷰, 제주참여환경연대 제공
도로 확장 이전 제주시 제성마을 왕벚나무들(위)과 확장 이후 잘려나간 뒤 모습(아래). 카카오 로드뷰, 제주참여환경연대 제공

아버지가 먼저 지금의 제주국제공항(일제 강점기 때는 정뜨르비행장으로 불림) 주변 몰래물(사수동)에 정착한 뒤 나머지 가족들을 불러들였다.

“아버지가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오사카에서 자물쇠 제조공장을 운영했어. 그곳에서 단란하게 살면서 학교에 다니다가 일본사람들이 ‘조센진’이라고 멸시하는 말이 싫어서 아버지가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해서 들어오게 됐어.”

9살 되던 1944년 겨울이었다. 제주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일본 히가시나리구의 나카미치소학교 3학년까지 다닌 양 할머니는 산지항(지금의 제주항)에 도착해 아버지가 끄는 ‘구르마’(마차)에 몸을 실었다. 몰래물로 가는 길에 본 제주는 희미한 불빛만이 보일 뿐 번화한 오사카와는 전혀 달랐다.

이듬해 해방이 되자 미군이 진주하고 비행장에서 일본군 비행기들이 폭파되는 모습을 지켜봤다. 1945년 10월께다.

“그때 일본군 비행기에 항공유를 넣었는데, 하얀색이었어. 제주사람들은 물자가 너무 부족해서 그 기름을 빼 오려고 하다가 기름이 손등에 묻으면서 불이 붙었어. 큰일 날 뻔했지. 마을 청년들은 일본군이 쌓아뒀던 군량미를 몇 가마니씩 갖고 오기도 했어.”

제성마을 주민 권귀옥 할머니가 17일 제주시청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왕벚나무 벌채의 부당성을 호소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제성마을 주민 권귀옥 할머니가 17일 제주시청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왕벚나무 벌채의 부당성을 호소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양 할머니의 오른쪽 손가락 마디 마디에는 그때의 화상 자국이 남아있다. 우리 말과 글을 몰라 야학에서 글을 깨친 다음에는 도두초등학교 4학년으로 편입했지만 이번에는 4·3사건이 터졌다. 학교는 불에 탔고 배움의 기회는 사라졌다. 4·3사건으로 인한 가족의 피해는 없었지만 정뜨르비행장에서 있었던 학살의 날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어머니가 제사 지내려고 밤에 부엌에서 준비하는데 비행장 코지(아래쪽)에 큰 추럭(트럭)에 사람들을 콩나물처럼 빼곡하게 태우고 오는 것이 보여. 이렇게 보니 사람들이 ‘어머니’ ‘아버지’하고 여기저기서 외치는 소리가 아주 가깝게 들렸는데 조금 있으니까 ‘다다닥’ ‘따다닥’하는 총소리가 들렸어. 그다음에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 왜 그날 저녁 달은 그렇게나 밝은지…” 1949년 7월9일 밤이었다.

일본 강점기에 비행장 공사로 쫓겨난 주민들은 섯동네 도두봉과 가까운 곳에 모여들면서 오늘의 신사수동(새몰래물)이 됐다. 주민들은 제주공항이 3차례에 걸쳐 확장되는 과정에서 이주해야 했고, 1980년대는 신사수동에 도두하수처리장을 만들면서 또다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38가구가 1979년 신성마을로 옮긴 데 이어 이들 가운데 16가구가 다시 제성마을로 이주해 마을을 만들었다. 1981년이었다.

제성마을 왕벚나무 대책위원회와 시민모임 낭싱그레가게2가 17일 제주시청 앞에서 ‘왕벚나무 살려내라’는 주제로 공동집회를 열고 있다. 허호준 기자
제성마을 왕벚나무 대책위원회와 시민모임 낭싱그레가게2가 17일 제주시청 앞에서 ‘왕벚나무 살려내라’는 주제로 공동집회를 열고 있다. 허호준 기자

양 할머니는 “마을이 형성된 기념으로 남편하고 마을 주민 몇 분이 한라산에 가서 어른 키만한 왕벚나무를 캐어와서 심었다”며 “남편이 지난 1월 돌아가셨는데 40여년 동안 키운 왕벚나무를 베어낸 사실을 알면 얼마나 억울할 거냐”고 했다.

“모든 일이 선후가 있는 거야. ‘나무를 베어내게 됐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주민들에게 먼저 물어봐야 하잖아. 시민이 있어야 시청이 있고 시청이 있어야 도청이 있는데 말이지. 왕벚나무는 마을의 공적 재산이야. 어린나무도 처리할 땐 베어내는 게 좋은지, 다른 곳으로 옮겨심어도 좋은지 고민하잖아. 수십 년 키운 나무를 하루아침에 자른 것을 보면 너무 억울해. 나무도 생명이야.”

이날 마이크를 잡은 권진옥(88) 할머니는 “여기(집회장소)만 오면 가슴이 쪼그라드는 것 같다”며 울먹였다. 권 할머니는 “남편과 함께 40여년 전 직접 왕벚나무를 심었다. 그때 나무를 심었던 분들은 모두 돌아가셨다”며 “이렇게 억울할 수가 있느냐”고 말했다.

집회에 참석한 송아무개 할머니는 “주민들이 제주시청에 왕벚나무 역사가 있는 만큼 베어내지 말라고 해서 벌채를 하지 않기로 했다가 갑자기 베어냈다. 왕벚나무들은 우리 마을의 역사다”라고 했다.

“몰래물의 기억이다. 왕벚나무 살려내라.” “할머니가 통곡한다. 왕벚나무 살려내라.” 연둣빛 무성한 구실잣밤나무와 왕벚나무 아래서 집회 참가자들이 외쳤다.

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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