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전수관에서 ‘이야기로 풀어보는 본풀이’를 진행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무쉐설캅(무쇠로 짠 상자)을 짠 저 바당더레 띠와부난~흥당망당 떠 댕기단 제주 와당더레(바다로) 들어오랐구나. 제주시로 들젠허난 산지 용궁 칠머리가 세어 못 들어간다. 화복으로 들제허난 가릿당이 세엉 못 들어간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 보존회 고문 이승순(74) 심방이 장구를 치며 ‘칠성 본풀이’를 풀어가자 수강생들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심방의 말에 귀를 모았다. ‘본풀이’는 신들의 이야기로, 신의 내력인 본(本)을 푼다는 의미이다.
지난 27일 오전 제주시 산책로인 건입동 사라봉 입구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전수관에서는 ‘이야기로 풀어보는 본풀이’가 진행되고 있었다. 10여명의 수강생 가운데는 20대 청년도 있었고, 다른 지방에서 온 이들도 있었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은 제주시 건입동 옛 건들게 마을의 해녀와 선주들이 신을 모시는 본향당에서 심방을 빌려 벌이는 굿으로, 영등신은 2월 초하루에 서풍을 타고 들어와 바다에 새로운 씨앗을 뿌려주고 보름에 북풍을 타고 떠나는 ‘바람의 신’이다. 이 굿은 섬 주민들의 해양 생활상이 담겨있는 신앙으로서의 중요성과 가치가 인정돼 1980년 11월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 71호’로 지정됐고, 2009년 9월엔 유네스코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에도 등재됐다.
이승순 심방이 지난 27일 제주칠머리당영등굿 보존회 전수관에서 열린 ‘이야기로 풀어보는 본풀이’에서 시연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지난 6일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진행하는 ‘보고 듣고 만지는 굿 이야기’는 일반인들이 쉽게 굿에 다가갈 수 있는 시간이다. 이날은 ‘칠성 본풀이’ 시간이다. 심방(무당)의 시연이 시작되자 수강생들은 심방이 풀어내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40년 넘게 무업에 종사해 온 이 심방이 장구를 치며 신의 내력을 풀어냈다. 심방들의 본풀이는 순수 제주어로만 돼 있어 제주인들도 신화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제주 굿 연구자인 민속학자 강소전 박사는 “심방이 무속의례의 진행을 위해 신의 강림을 청하고 신에게 소원을 빌 때 신의 위력을 드러내기 위해 본풀이를 부른다. 신이 본을 잘 풀면 즐거워 기원자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이 심방은 “사람이 살아있는 게 모두 역사”라고 했다.
제주도는 예부터 1만8천의 신이 있는 신화의 땅이라고 불렸다. 일제 강점기부터 제주도의 ‘무가’(巫歌)를 눈여겨본 민속학자들은 해방 직후인 1946년에는 칠머리당을 찾아 굿 시연을 직접 촬영하기도 했다. 제주도에는 마을마다 당이 있다. 본향당은 마을 사람들을 보호해주고, 이렛당은 아이들의 건강을, 해신당은 바다 관련 생업의 풍요와 안녕을 돌봐주고 산신당은 사냥과 목축을 하는 이들의 생업을 보호해준다는 믿음이 뿌리 깊다. 수강생 신현종(25)씨는 “제주 굿에 관심이 있어서 왔다”며 “자세히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심방의 본풀이를 직접 들을 수 있고, 자세하게 설명해줘서 좋다 ” 고 말했다.
제주도 무형문화재 5호로 지정된 제주시 조천읍 송당리 송당본향당에서 열리는 마을제. 허호준 기자
제주칠머리당영등굿 보존회가 주최한 이날 행사는 지난 6일 ‘칠머리당본풀이’, 13일 ‘지장본풀이’, 20일 ‘할망본풀이’에 이어 진행됐다. 다음 달에는 굿 음악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매주 수요일마다 ‘소리로 풀어보는 연물’이라는 주제로 굿에 사용하는 악기의 기본을 다루게 되며, 10월에는 매주 금요일마다 ‘그림자극으로 만나는 영등할망이야기’를 주제로 그림자극을 체험하는 시간을 갖는다. 강사들은 오랜 기간 활동한 심방들이 맡고 있다.
이와 함께 보존회는 지난 5월부터 매달 둘째, 넷째 주 금요일에는 전수관 내 공연장에서 금요 상설 공연 ‘금요일엔 굿이지, 굿(巫) 꽃을 피우다’를 열고 있다. 상설 공연은 제주 해녀 신앙과 민속 신앙이 녹아든 칠머리당영등굿 공연과 함께 굿에 내재한 미술·음악·춤·연극 등의 요소를 바탕으로 한 창작 예술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다음달 3일 낮 12시에는 보존회 주최로 4·3 피해 여성의 상징이 된 ‘무명천 할머니 추모 위령굿’을 제주시 한림읍 월령리 해변공연장에서 연다. 서귀포시 상선읍 수산1리도 지난 5월부터 12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본향당과 마을 신당에서 마을굿을 진행하고 있다.
강 박사는 “제주의 굿은 제주의 역사이자 문화의 원류나 다름없다”며 “본풀이는 구비전승의 서사무가이고, 제주도 곳곳의 의례에서 전승되고 있는 살아있는 신화”라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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