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가 포클레인 등을 동원해 제성마을 입구에 마지막 남은 왕벚나무 그루터기를 옮기려 하는 과정에서 주민·환경단체들과 대치했다. 허호준 기자
도로를 확장하면서 주민들이 심어놓은 수십년 된 왕벚나무들을 베어내 논란에 휩싸였던 제주시 제성마을에서 마지막 남은 왕벚나무 그루터기를 14일 옮기려 하자 주민들과 환경단체가 반발했다. 같은 시각 제주시 사라봉에서는 강병삼 제주시장이 시가 주관하는 식목일 행사에 나가 왕벚나무를 심었다.
이날 오전 제성마을 앞 도로에서는 왕벚나무 뿌리 제거 작업에 돌입하려는 인부들과 주민들의 대치가 이어졌다. 전 제성마을 회장 오면신씨는 “제주시가 지금 남아 있는 벚나무는 순이 나오고 꽃도 피어서 화단을 만들어 보존하겠다고 약속했다. 마을을 만들 때 심은 벚나무 중 마지막 남은 벚나무를 아무 얘기 없이 잘라내면 어떻게 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제주시는 2021년부터 신광교차로~도두 간 도로구조 개선 사업을 하면서 주민들이 40여년 전 심은 왕벚나무를 잘라내 갈등을 빚었다. 지금까지 베어낸 왕벚나무는 13그루로, 이 가운데 12그루는 뿌리까지 뽑아냈다는 게 주민과 시민단체 주장이다.
2020년 벌목되기 전 왕벚나무(왼쪽)와 그루터기만 남은 왕벚나무. 카카오 로드뷰, 허호준 기자
주민들이 지킨 마지막 한그루의 그루터기에서 싹이 나오자 제주참여환경연대는 지난 8일 ‘맹아지’를 보존해달라고 제주시에 요구했다. 이 단체는 “시가 벚나무 그루터기를 다른 곳으로 옮겨 심겠다고 하더니, 곡괭이로 내리쳐 뿌리를 심각하게 손상시켰다. 누가 봐도 다른 곳에 옮겨 심을 목적으로 파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시각 강병삼 시장은 사라봉공원에서 열린 식목일 행사에 참석했다. 시는 이날 기관·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350여그루의 왕벚나무를 심었다. 강 시장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제주는 지금이 나무 심기에 좋은 절기라고 한다”며 “오늘 간만에 삽질을 좀 했다. 얼른 자라서 좋은 벚꽃 숲 산책길이 되어주면 좋겠다. 행정에서는 삽질하지 않겠다”는 글과 함께 왕벚나무를 심는 사진을 올렸다.
강병삼 제주시장이 14일 오전 사라봉공원에서 식목일 행사로 왕벚나무를 심고 있다. 제주시 제공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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