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유족회 등 관련 단체들이 15일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의 ‘4·3 망언’에 대해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저는 2살 때 4·3을 만났고, 연좌제 때문에 어렵게 살아왔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연좌제를 피부로 느끼면서 살아왔습니다. 명예회복되고 피해회복 차원에서 정부가 보상하는 마당에 태영호 의원의 발언은 유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습니다.”
15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마이크를 잡은 양성홍 제주4·3행방불명인협의회장의 목소리는 떨렸다. 양 회장의 부친은 1949년 끌려간 뒤 대전형무소에서 두 차례 집으로 편지를 보낸 뒤 행방불명됐다. 아버지가 끌려갈 때 2살이던 양 회장은 1999년에야 아버지가 대전형무소에서 학살됐다는 사실을 신문을 통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사관학교를 가고 싶었지만 연좌제 때문에 가지 못 해 아버지를 원망해왔던 그다. 지난해 8월 제주지방법원에서 4·3 수형 행방불명인들에 대한 재심을 통해 아버지의 무죄를 받아냈다.
양 회장이 다시 법원 앞에 선 것은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의 거듭된 ‘4·3 망언’ 때문이다. 태 의원은 지난 2월13일 제주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 합동연설회에 앞서 “제주4·3사건은 명백히 김일성 일가에 의해 자행된 만행”이라며 ‘김일성 지시설’을 거론했고, 그 이후에도 발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진실을 왜곡해왔다.
정부가 2003년 10월 발간한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는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설이나 북한 지령설은 근거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태 의원은 그동안 4·3유족과 관련 단체들의 지속적인 사과 요구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날 제주4·3유족회와 수형 생존자로 무죄 판결을 받은 오영종(92)씨와 양 회장 등은 태 의원을 상대로 심각하게 명예가 훼손됐다며 제주지법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로 참여한 이들 가운데 오씨는 피신생활을 하다 붙잡힌 뒤 1949년 7월 군사재판에서 징역 15년형을 받고 7년6개월 동안이나 수형생활을 한 뒤 석방됐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고희범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태 의원이 여야 합의로 제주4·3특별법 제·개정과 정부가 확정한 진상조사보고서를 부정하고 거짓 선동을 했다. 이런 여당 최고위원의 발언은 정치적, 도덕적, 법률적으로 중대한 범죄행위가 아닐 수 없다”며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김창범 유족회장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태영호 의원은 국민의힘 징계 과정에서조차 자신의 안위를 위해 최고위원직을 사퇴했을 뿐, 4·3에 대한 망언과 왜곡행위에 대해서는 어떤 사과도 없었다. 희생자를 모독하고 유족의 명예를 훼손한 데 대해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이어 “태 의원의 4·3 망언과 왜곡은 과거 정권의 색깔론과 이념 공세로 혹독한 시련을 겪었던 유족과 도민들의 트라우마와 상흔에 소금을 뿌리며 재연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주4·3특별법 제13조(희생자 및 유족의 권익 보호)는 “누구든지 공공연하게 희생자나 유족을 비방할 목적으로 제주4·3사건의 진상조사 결과 및 제주4·3사건에 관한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여 희생자, 유족 또는 유족회 등 제주4·3사건 관련 단체의 명예를 훼손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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