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전국 제주

4·3 재심 법정 선 제주시장 “억울하게 옥살이한 큰아버지…”

등록 2023-08-30 16:47수정 2023-08-31 02:32

강병삼 제주시장이 제주4·3평화공원 내 위패봉안실에서 큰아버지의 위패를 찾고 있다. 제주시 제공
강병삼 제주시장이 제주4·3평화공원 내 위패봉안실에서 큰아버지의 위패를 찾고 있다. 제주시 제공

“아버님은 백부모의 이름이 적힌 조그마한 위령비를 세우려고 몇날 며칠을 고심하셨습니다. 비석의 뒷면에 무엇인가를 적어야 하는데 몇번씩 고쳐서 자식들과 상의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나중에는 딱 한줄만 적었어요. ‘4·3 때 행방불명되어 이 비를 세우다’였습니다.”

강병삼 제주시장은 30일 오전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4·3 희생자인 큰아버지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강 시장은 전날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 4·3 직권재심 재판에 유족 신분으로 참석했다.

강 시장의 큰아버지(강재현)는 중산간 마을인 애월면 상귀리에서 어머니, 아내, 동생 등 다섯 식구와 함께 살며 농사를 짓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초토화가 진행된 1948년 11월 이후 토벌대는 중산간 마을 주민들에게 해안 마을로 내려가도록 소개령을 내린 뒤 마을에 불을 질렀다. 주민들은 토벌대의 학살을 피해 산간으로 피신하기도 했고, 해안가의 친인척들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산으로 피신한 뒤 가족과 헤어진 큰아버지는 1949년 3월께 경찰이 “지서에 나오면 사면해준다”는 말에 스스로 지서를 찾아갔다. 큰아버지는 같은 해 7월 군법회의에서 국방경비법 위반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목포형무소에서 첫번째, 마포형무소에서 두번째 엽서를 집으로 보낸 큰아버지는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행방불명됐다.

강 시장은 “2012년 3월 변호사시험에 합격해 아버지를 찾아갔더니 ‘착하다’는 칭찬이 전부였어요. 그리고는 ‘네가 공부하는 동안 신경 쓰일까 봐 하지 못한 게 있다. 하루만 시간을 내라’며 백부모 비석 이야기를 꺼내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비석을 세운 날, 술을 마셨다.  “어머니가 술을 더 드시지 말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오늘은 마셔도 된다’며 엄청 마셨어요. 나 ‘이제 숙제 다 했다’고 하면서요. 그날의 일은 우리 형제들에게도 ‘아버지가 60년 넘게 형님을 생각하며 사셨구나. 우리들은 그렇게 하고 있나’ 하고 돌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날 오후 제주지방법원 형사4-2부(재판장 강건)는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단장 강종헌)이 청구한 군사재판 직권재심 대상자 30명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지금까지 37차례에 걸쳐 직권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된 4·3 군법회의 피해자는 모두 1061명이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전국 많이 보는 기사

32사단 신병교육 중 수류탄 터져…훈련병 사망, 교관 중상 1.

32사단 신병교육 중 수류탄 터져…훈련병 사망, 교관 중상

징역 20년 구형 받은 습격범 “자연인 이재명에 미안” 2.

징역 20년 구형 받은 습격범 “자연인 이재명에 미안”

540만원 저축→1080만원 지급…서울시, ‘희망두배 청년통장’ 모집 3.

540만원 저축→1080만원 지급…서울시, ‘희망두배 청년통장’ 모집

교회 사망 여학생, 학교는 장기결석 보고조차 안 했다 4.

교회 사망 여학생, 학교는 장기결석 보고조차 안 했다

“인구 500만 대구직할시” 대구·경북 행정통합 다시 띄우는 홍준표 5.

“인구 500만 대구직할시” 대구·경북 행정통합 다시 띄우는 홍준표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