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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명 대숙청 ‘몽골의 4·3’…조금씩 커지는 진상규명·명예회복 요구

등록 2023-09-15 13:55수정 2023-09-15 14:09

몽골 국립중앙박물관 앞에서 10일 열린 정치적 박해 희생자들을 위한 국가추도의 날 행사에 참석한 유족들이 희생자들의 사진을 들고 있다. 허호준 기자
몽골 국립중앙박물관 앞에서 10일 열린 정치적 박해 희생자들을 위한 국가추도의 날 행사에 참석한 유족들이 희생자들의 사진을 들고 있다. 허호준 기자

‘혹독한 시간을 보낸 우리 몽골인들이여. 절대 잊지 말자’.

몽골 울란바토르 국립공원 한쪽에 자리 잡은 추모공원에는 몽골의 전통문자로 이렇게 적힌 추모비가 소박하게 서 있다. 황량한 초원 앞으로는 보그드칸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뒤로는 상가 및 주거지역이다. 추모비 좌우로는 희생자 249명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각명비가 있다.

지난 9일 울란바토르 국립공원에는 공원을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학생들이 교사의 지시에 따라 가방을 한쪽에 두고 달리기를 했고, 2인용 자전거를 타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시민과 관광객들도 보였다.

관광열차 같은 이동수단을 이용해 5분 남짓 가자 넓은 초원 위에 크지 않은 면적을 차지한 추모비가 나타났다. 1930~1940년대 옛 소련에서 희생된 249명의 몽골인을 추모하기 위한 공간이다. 1년 전인 지난해 9월 울란바토르시의회가 조성했다. 이날 오후 2시 추도식이 가까워지자 삼삼오오 국화나 카네이션을 든 유족들이 모여들었다.

“1990년 러시아 정부 인사들이 몽골에 와서 희생자 가족들을 만날 때야 비로소 우리 가족의 일을 알게 됐어요. 그 전에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아 할아버지가 희생된 사실을 몰랐지요.”

하얀 카네이션 다발을 든 초이존 네르구이(63)는 이렇게 말했다. 국회의원이었던 할아버지는 1939년 3월 강제연행돼 행방불명된 뒤 1942년 7월10일 모스크바에서 처형됐다. 그는 “아버지한테 들은 이야기로는, 할아버지가 연행된 뒤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군에서 쫓겨났고, 주택과 가축도 빼앗겨 집안 형편이 급격히 어려워졌다”며 “1992년 정부로부터 보상금 100만 투그릭(한화 38만원 정도)을 받은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어용 에르덴(가운데) 몽골 총리와 오돈투야 국회 부의장(왼쪽) 등이 10일 열린 국가 추도의 날 행사에 참석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어용 에르덴(가운데) 몽골 총리와 오돈투야 국회 부의장(왼쪽) 등이 10일 열린 국가 추도의 날 행사에 참석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추모식을 주관한 바드야스갈란 울란바토르시의회 의장은 “울란바토르 시민공원 가운데 가장 큰 공원이고, 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장소여서 추모공간을 조성하게 됐다. 비극적인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서 지난해 건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몽골에서의 정치적 박해는 소련의 영향력 아래 들어간 1921년부터 시작됐다. 1990년 민주혁명이 성공할 때까지 정치인과 승려, 지식인, 자본가 등을 탄압하고 유목민들의 강제 집단화를 통한 정체성 말살정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광범위한 인권유린이 자행됐다. 3만6천~3만7천여명이 희생됐다는 게 중론인데, 일부에선 희생자 규모를 8만~10만여명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조카와 딸의 부축을 받으며 추모식에 참가해 헌화한 유족 바탐 미야바트(102)는 1930년대에 아버지와 삼촌이 희생되면서 집안이 파탄 났다고 했다. “1990년까지 희생자 가족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살았다”는 바탐은 “러시아어를 구사했던 아버지가 시골에서 관리로 있었으나 1934년 러시아로 강제이송된 뒤 피해가 두려워 아예 이름을 바꿔 생활해야 했다. 학교에 다니지 못했고, 오빠도 학교와 군대에 가지 못했다. 남편도 나 때문에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며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각명비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몽골 정치적 박해 희생자 유족들이 10일 국가 추도의 날 행사에서 헌화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몽골 정치적 박해 희생자 유족들이 10일 국가 추도의 날 행사에서 헌화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추도행사는 단출했다. 시의장의 추도사와 유족들의 헌화가 전부였다. 국가회복관리위원회 사무처장 투굴더는 “1921년부터 70여년 동안 국가폭력 사례가 많았지만 이를 언급하는 것이 금기시 됐다. 당시 400여명이 러시아에서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각명비에는 249명의 이름만 있다”며 “희생자들의 신원은 70여년이 지난 뒤에야 알려졌지만, 여전히 확인되지 않은 희생자들도 많다”고 말했다.

10일 오전 10시 국립중앙박물관 앞에 설치된 ‘정치적 박해 희생자 기념물’ 앞에서 열린 국가 추도의 날 행사에는 어용 에르덴 총리와 오돈투야 국회 부의장 겸 국가회복위원장을 포함한 정치인들과 정부 관리, 유가족 등이 참석했다. 몽골 국회는 1996년 해마다 9월10일을 정치적 박해 희생자들을 기리는 ‘국가 추도의 날’로 정했다. 한국에서는 고희범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하지만 참가자는 의장대를 빼고 100여명 정도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단출했다. 장소 또한 국립중앙박물관 도롯가 모퉁이에 설치한 기념물 앞에서 치러졌다. 흔한 추도사나 추념사도 없이 행사는 20여분 만에 끝났다.

몽골의 정치적 박해 희생자 유족이 아버지의 초상화를 들고 있다. 허호준 기자
몽골의 정치적 박해 희생자 유족이 아버지의 초상화를 들고 있다. 허호준 기자

추도행사에는 몽골의 전통복장을 한 채 희생자 사진을 안고 참가한 유족도 여럿 보였다. 행사가 끝나자 기념물 주변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아버지가 1953년부터 10년 동안 몽골의 교도소에서 수형 생활을 했다는 오를지미크(60)는 “스님이었던 아버지는 아무런 죄 없이 끌려가 환경이 열악한 교도소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수형 생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울었다”며 “100만 투그릭을 보상금으로 받았다. 4천만 투그릭(한화 1520만원 정도)을 보상한다고 했는데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오를지미크가 손에 든 아버지의 초상화에는 희생자 인증서도 붙어있었다. 유족들은 “보상금이 터무니없이 작다”는 불만도 터뜨렸다.

대숙청이 절정이던 1937~1939년 최대의 희생자는 몽골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불교계였다. 1만7천~1만8천여명의 스님이 처형되고 800여개에 이르는 전국 사찰 대부분이 파괴됐다. 정부가 주최하는 국가 추도의 날 행사보다 오히려 불교계의 추도법회가 더 크게 보였다.

몽골 울란바토르국립공원에 조성된 정치적 박해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지난 9일 유족들이 참가한 가운데 추모식이 열렸다. 허호준 기자
몽골 울란바토르국립공원에 조성된 정치적 박해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지난 9일 유족들이 참가한 가운데 추모식이 열렸다. 허호준 기자

이날 오전 11시부터 전국의 사찰에서는 온종일 당시 희생된 스님들을 위한 추도법회가 열린다. 이날 방문한 몽골 최대의 사찰 간단사원 법당에서는 수십 명의 스님과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법회가 열리고 있었다. ‘끔찍한 대량학살의 본질을 알지 못하면 발전할 수 없다. 진실을 미래세대에 알리자’ ‘잊지 말자’ 등의 푯말이 전시돼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초이잠츠 주지 스님은 “사회주의 시대에 불교계는 최대의 희생자였다”며 “올바른 역사를 배우고 우리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몽골에서는 1990년 대통령령으로 국가회복관리위원회가 설립됐으나 법률적 근거 미비로 지지부진하다가 1998년 ‘정치적 박해 희생자 복권 및 보상법’이 제정됨에 따라 위원회가 진상 규명을 벌이고, 이를 토대로 법원 판결을 통해 희생자 인정이 가능해졌다. 몽골은 법 제정 뒤 여러 차례 개정을 통해 희생자들에 대한 복권과 보상, 추념 행사 등을 하고 있다. 오치르수렌 위원회 관리분석과장은 “희생자 수가 3만6천여명에 이르지만, 소련으로 이송되던 중에 처형된 희생자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몽골 최대의 사원인 간단사원에서 대숙청 당시 희생된 스님들을 추모하는 법회가 지난 10일 열렸다. 허호준 기자
몽골 최대의 사원인 간단사원에서 대숙청 당시 희생된 스님들을 추모하는 법회가 지난 10일 열렸다. 허호준 기자

몽골의 대숙청은 제주4·3과 원인과 이유는 다르지만 그 이후의 상황은 유사한 점이 있다. 미국이 4·3에 관련이 있는 것처럼 소련은 대숙청과 관련이 있다. 두 사건 이후 희생자 유족들은 학교나 직장을 다니지 못했고, 연좌제에 시달렸으며, 피해를 우려해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목소리도 유사하다. 국가회복관리위원회는 제주4·3평화재단과 같은 재단을 설립하고, 테럴지 국립공원 내에 기념관과 콘서트홀, 교육시설 등을 갖춘 ‘정치적 박해 희생자 추념공원’ 조성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몽골의 과거사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은 갈 길이 멀다. 민주혁명 이후에도 오랜 기간 집권해온 인민당이 과거 자신들의 전신인 인민혁명당이 자행한 탄압을 규명하는 데 소극적이고, 기록도 부족한 데다 유족들의 결집이 쉽지 않은 점도 해결을 더디게 한다. 이 때문에 몽골 안에선 1930~1940년대 러시아의 박해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아직 없다. 몽골 쪽 관계자는 “집권당인 인민당이 수구적 행태를 보이며 의도적으로 행사를 축소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국가 추도의 날 행사가 초라한 것은 여전히 진상조사와 추모행사를 방해하는 세력이 많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돈투야 위원장은 “몽골은 1990년 공산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면서 민주국가가 됐다. 추모비를 세우는데도 어느 정도의 용기가 필요했다. 몽골 내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이 있지만, 민주와 인권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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