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전남편 살해사건’ 피의자인 고아무개씨에 대한 첫 재판이 열린 12일 오전 제주지방법원에 재판 방청을 원하는 주민들과 기자들이 방청권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제주에서 전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고아무개(36)씨가 참석한 첫 공판이 12일 진행돼 검찰과 고씨 쪽 변호인 간에 치열한 법정 공방을 예고했다. 고씨는 지난 6월12일 검찰에 송치된 뒤 2개월 만에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제주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정봉기)는 이날 오전 201호 법정에서 첫 정식 공판을 열었다. 1시간 20분 남짓 진행된 이날 공판에서 계획적이고 고의적 범행을 주장하는 검찰과 우발적 범행을 주장하는 고씨 쪽 변호인 간에 공방의 전초전 성격을 띠었다.
검찰은 “피고인이 ‘기억이 파편화됐다’며 일방적 주장과 침묵으로 일관했다”며 계획적 범행을 주장하는 요지의 공소사실을 낭독했다. 고씨 쪽 변호인은 고씨의 주검 손괴·은닉은 인정하면서도 ‘계획적이고 고의적 살인’이라는 검찰 쪽 공소사실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변호인은 “피고인이 피해자인 강아무개(36)씨에게 수면유도제인 졸피뎀이 섞인 음식물을 먹인 사실이 결코 없다. 피해자가 고씨를 겁탈하려 했다”며 우발적 범행임을 주장했다. 변호인은 또 “검찰은 졸피뎀으로 인해 피해자가 의식이 혼미해지자 흉기로 찔렀다고 기재했으면서도, 피해자와 고씨가 몸싸움을 했다고 하는 것은 모순된 주장이다. 또 언론에는 피의자의 상처가 자해흔이라고 했지만, 몸싸움 과정에서 상처를 입었다고 기재한 것은 스스로 공소사실을 부정하는 것이다”며 검찰 쪽 공소사실을 강하게 부인했다. 변호인은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졸피뎀을 먹인 사실이 없다. 피해자의 혈흔에서 졸피뎀이 나왔다는 검출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했다.
제주 ‘전남편 살해사건’ 피의자 고아무개씨가 12일 재판이 끝나고 호송차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주민들과 취재기자들이 호송차 주변에 몰려들었다.
휴대전화와 컴퓨터 등을 이용해 졸피뎀이나 혈흔, 니코틴 치사량 등을 검색한 부분에 대해서도 변호인 쪽은 당시 연예계 비리 고발 건이나 생리, 전자담배 등을 검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검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검찰은 “피해자의 행동이 비극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발언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좌시하지 않겠다. 졸피뎀이 피해자의 혈흔에서 나왔다는 국립과학수사원의 감정 결과가 있다. 휴대전화와 컴퓨터 등을 통한 인터넷 검색은 우연히 한 것이 아니고 직접 검색어를 입력한 것으로 연관검색어가 아니다”며 맞받았다.
이날 공판은 제주지법 사상 처음으로 방청권을 선착순 배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재판장이 시작을 알리자 고씨는 고개를 숙인 채 교도관의 안내를 받으며 변호인 옆 피고인석에 앉았다. 일부 방청객은 고씨가 법정에 들어서자 험한 말을 쏟아냈고, 재판장은 “재판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협조해달라”고 두 차례나 협조를 구한 데 이어 경고하기도 했다. 한 흥분한 주민은 재판이 끝난 뒤 호송차에 오르던 고씨의 머리채를 잡기도 했다.
다음 공판은 9월2일 오후 2시 열린다. 고씨는 지난 5월25일 오후 8시10분부터 9시50분 사이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펜션에서 전남편 강씨를 흉기로 숨지게 한 뒤 주검을 손괴·은닉한 혐의를 받고 있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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