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제주지사가 23일 태풍 ‘타파’의 피해를 본 제주시 애월읍 금성리의 농가를 방문해 피해 현장을 살펴봤다. 제주도 제공
강풍과 물폭탄을 동반한 제17호 태풍 ‘타파’가 22일 제주도와 남해안 농촌 들녘을 휩쓸고 지나가면서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제주지역은 가을장마와 태풍 링링에 이어 이번 타파까지 할퀴고 지나가면서 밭작물 피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제주도 재난안전대책본부의 강우량 통계를 보면, 지난 21일부터 이날까지 제주에 내린 비의 양은 어리목 일대에 782㎜, 관음사 726.5㎜, 어승생 680㎜ 등을 기록했다. 한라산 일대에 650㎜ 이상의 폭우가 쏟아진 것이다. 또한 제주시 도심지인 신제주에도 391.5㎜를 비롯해 노형동에 496.5㎜의 기록적인 비가 내렸고, 밭작물 재배지인 제주시 구좌읍 지역에는 221㎜, 서귀포시 성산읍 지역에도 303.5㎜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제주지역은 지난달 말부터 계속된 가을장마에 이어 지난 7일 태풍 ‘링링’으로 인해 이미 농작물 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이번 태풍에 또다시 직격탄을 맞으면서 피해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도는 이번 태풍 타파의 영향으로 월동무 1200㏊와 양배추 350㏊, 감자 240㏊, 당근 120㏊, 기타작물 180㏊가 물에 잠기는 등 모두 2090㏊의 농작물이 침수 피해를 본 것으로 잠정집계했다. 앞서 장마와 태풍 ‘링링’으로 제주도에 신고된 작물별 피해 현황을 보면, 콩 1460㏊, 감자 1020㏊, 당근 1005㏊, 월동무 938㏊와 마늘과 더덕, 브로콜리 등 기타 작물 1693㏊다.
고석진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장은 “태풍 링링이 지나간 뒤 당근을 재파종했는데 이번 태풍에 모두 쓸려갔다. 이제는 기온과 일조량 때문에 다시 파종할 수 없는 상태다. 감자도 많은 농가가 폐작 수준이다”라고 토로했다. 서귀포시 성산읍 지역의 농민도 “연속된 장마와 태풍 때문에 당근 농사는 끝났다. 월동무도 재파종이 어려워 올해는 수확량이 줄어들 것 같다”고 말했다.
전남 일대에서도 이번 태풍으로 추수를 앞둔 논이 물에 잠기는 등 침수피해가 이어졌다. 특히 나주의 피해가 컸는데, 전남 지역에서 침수 피해가 발생한 농지 496㏊의 절반 가량인 210㏊가 나주의 논에서 발생했다. 태풍 링링에 쓰려진 벼를 미처 세우기도 전에 또다시 태풍을 맞은 것이다. 나주시 관계자는 “태풍에 쓰러진 벼를 바로 세우더라도 이삭에서 싹이 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어 수확량 감소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경남에서는 낙과 피해가 두드러졌다. 경남 밀양시의 얼음골 사과 재배단지는 20~50% 가량 낙과 피해를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북에서도 벼가 쓰러지는 등 태풍 피해가 이어졌다. 약370㏊에 달하는 논에서 벼 쓰러짐 피해가 발생했으며, 이는 경북도 전체 농산물 피해의 60%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편, 남부지방을 강타한 태풍 ‘타파’는 23일 아침 9시께 독도 동북동쪽 약 270㎞ 부근 바다 위에서 온대저기압으로 바뀌어 소멸했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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