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돌하르방에 동백꽃이 수놓아진 마스크가 씌워져 있다.
제주에서는 심심찮게 옷이나 가방 등에 ‘동백꽃 배지’를 단 시민들을 볼 수 있다. ‘동백꽃 배지’는 지난 2018년 제주4·3 70주년을 계기로 유족이나 정치인은 물론 일반인들에게 널리 보급되면서 ’4·3배지’로 알려졌다. 제주4·3평화재단은 4·3평화공원에 동백나무 심기 운동을 벌이고, 공원 내 돌하르방에는 동백꽃 마스크를 씌울 정도다.
이 배지가 때아닌 논란에 휩싸였다. 제주도가 지난 15일 제주시 조천체육관에서 열린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가하는 주요 기관장들에게 ‘동백꽃 배지’를 떼고 참석하자고 제안해 원희룡 지사와 이석문 도 교육감, 좌남수 도의회 의장이 배지를 떼고 참석했기 때문이다.
도 관계자는 “광복절은 경축일이고, 4·3영령에 대한 추모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4·3 배지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경축식 당일 오전 도 교육청과 도의회 의전 담당에게 4·3 배지를 달지 않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고 해명했다.
4·3 유족과 관련 단체들은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유족들은 “동백꽃 배지는 4·3추념식이나 애도의 장에서만 부착하는 것이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동백꽃이 4·3의 상징이 된 것은 강요배 화백이 1990년대 초 ’동백꽃 지다’라는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때부터이다. 강 화백 몇 차례 인터뷰를 통해 “제주의 소설가인 고 오성찬 선생이 1988년 정리한 채록집 속 김인생 할머니의 증언이 모태가 됐다”고 말한 적이 있다. 책 속에는 남편과 6남매의 자식 가운데 셋을 4·3 때 잃고, 자식 둘은 병으로 먼저 세상을 보낸 김 할머니의 증언이 이렇게 적혀 있다.
“붉게 핀 동백꽃을 바라보거나 멀리 한라산 꼭대기에 쌓인 흰 눈을 쳐다보노라면 아름답고 평화로운 그 모습 속에 숨겨진 ’피의 역사’가 떠오르곤 한다. 흰 눈 위에 동백꽃보다 더 붉게 뿌려졌던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 이제는 잊어야 한다고, 아니 벌써 잊었다고 생각했던 무자년(1948년)의 4월은 내 인생과 우리 집안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지난 2018년에는 4·3 70주년을 맞아 동백꽃 배지 달기 운동을 벌였다.
제주도의 제안을 받고 배지를 뗐던 이 교육감은 1989년 4·3 증언채록집 <이제사말햄수다>의 출판에 참여했던 4·3 진상규명운동 1세대 그룹에 속한다. 도 교육청 차원의 4·3 평화·인권교육에 애써온 이 교육감은 18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행사장 도착 5분 전 “수행 비서로부터 ‘배지를 달지 않기로 했다’는 연락을 받고 아무런 생각 없이 떼었다”며 “4·3을 상징하는 ‘동백꽃 배지’를 떼고 기념식에 참석한 부끄러운 과오를 보여드렸다.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는 “경축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아 4·3 배지를 달지 않았다는 제주도의 답변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궁색하다”고 비판했다. “사실 배지를 패용하고 안 하고는 온전히 개인의 선택 문제다. 그러나 이를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패용하지 말자’고 제안한 데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이 배지를 디자인한 박경훈 화백은 “동백꽃 배지는 추모의 의미만을 담은 게 아니라 4·3의 상징이 됐다. 배지를 패용하는 것은 4·3 희생자 애도는 물론 이를 기억하고, 평화와 인권을 생각하자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직 원 지사나 제주도의 공식적인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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