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전국 제주

‘겨울비로, 흰눈으로, 바람으로 온 4·3’…제주 성산포 위령제

등록 2020-11-05 15:44수정 2020-11-05 15:48

5일 성산포 터진목서 4·3희생자 위령제 봉행
5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터진목에서 ‘성산읍 4·3희생자 위령제’가 열려 유족들이 헌화와 분향을 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5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터진목에서 ‘성산읍 4·3희생자 위령제’가 열려 유족들이 헌화와 분향을 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혼백으로 왔을까/ 얼마나 가슴이 저밀면 겨울비로 왔을까/ 얼마나 창자가 아리면 흰눈으로 왔을까/ 얼마나 마음이 아프면 바람으로 왔을까/…/그 겨울꽃이 우리를 받아주어/ 그 겨울꽃이 우리를 안겨주어/ 그 겨울꽃이 우리를 반겨주어/ 이젠 외롭지 않습니다.”

5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터진목에서 열린 ‘성산읍 4·3위령제’에서 지팡이를 짚은 80대 노시인 강중훈씨가 애잔하게 낭송한 추모시 ’어느 소년의 낡은 일기장 속 잊혀진 이야기-강낭콩 익을 무렵’이 성산일출봉 앞바다의 반짝이는 물결에 반사됐다. 당시 9살이던 강 시인은 아버지를 포함한 아버지 삼 형제와 조부모 등 온 가족이 학살된 터진목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아남았다. 터진목 일대에 해안가에는 보라색의 갯쑥부쟁이들이 곳곳에 피어 성산 일출봉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뤄 관광객들이 사진찍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그러나 터진목 4·3희생자 위령비가 있는 곳에 모자를 쓰거나 스카프를 두르고 앉아있는 70~80대의 노인들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형제자매와 부모, 친척들이 이곳에서 희생된 4·3 유족들이다.

성산읍 4·3희생자 위령제는 1948년 겨울부터 이듬해까지 서북청년단으로 구성된 군인들에 의해 이곳에서 학살된 이들을 기리기 위해 열린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터진목에 설치된 ‘제주4·3 성산읍 지역 양민 집단학살터 표지석’. 허호준 기자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터진목에 설치된 ‘제주4·3 성산읍 지역 양민 집단학살터 표지석’. 허호준 기자

수많은 관광객이 드나드는 터진목은 성산 일출봉이 한눈에 들어오는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지만 당시 성산읍 지역 전체 희생자 460여명의 절반에 가까운 200여명이 학살된 처형장이었다. 이곳에서 희생돼 유족을 찾지 못한 많은 주검은 바다로 떠밀려가 행방불명되기도 했다.

위령제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예년에 비해 적은 규모로 진행됐다. 희생자 유족과 지역주민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위령제는 국민의례, 주제사, 추도사, 헌화 및 분향의 순서로 진행됐다. 정순호 성산읍 4·3희생자유족회장은 “원혼들의 소망은 일출의 햇살처럼 인권이 살아잇는 평화로운 사회라는 것을 후손들은 알고 있다. 후손들이 어렵게 가고 있는 4·3의 길을 위해 빛을 밝혀주시고 쓰러지지 않도록 힘을 실어달라”고 호소했다.

성산읍 4·3희생자유족회는 제주올레 1코스 구간에 있는 터진목에 2010년 위령비를 세웠고, 2011년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장 마리 귀스타보 르 클레지오가 제주4·3에 대해 쓴 글이 새겨진 문학, 제주4·3 성산읍 지역 양민 집단학살터 표지석을 세우는 등 4·3공원화 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전국 많이 보는 기사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1.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2.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3.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4.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5.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