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행불 수형인 유족들이 30일 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제주4·3 당시 다른 지방에서 수감돼 있다 행방불명된 이른바 ‘4·3 행불 수형인’들에 대한 재심 길이 열렸다. 그동안 수형생활을 하다 돌아온 당사자인 ‘수형 생존자’들이 재심을 청구해 무죄 취지의 판결을 받은 사례는 있지만, 행불 수형인들의 유족의 재심 청구소송을 받아들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장찬수)는 30일 오후 4·3 당시 군사재판을 받고 다른 지방 형무소로 간 뒤 행방불명된 유족 10명이 낸 4·3 행방불명인 재심 청구소송에서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이번 개시 결정의 관건은 4·3 행방불명인들의 ’사망’ 여부와 불법 연행과 고문 등이었다. 문성윤 변호사 등 변호인 쪽은 행방불명된 당사자들의 나이와 4·3 평화공원 내 표지석 설치, 제사 등을 통해 이들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는 논지로 재심 청구인들을 변호해왔다.
재판부는 “정부 주도로 진행된 진상조사에서 당시 만행이 자행된 게 이미 밝혀졌고, 또 (수감자들이) 귀가하지 않은 채 소식이 끊길 아무런 이유가 없다. 제주4·3 평화공원에 묘비(표지석)마저 설치돼 있고, 유족들은 제사를 모시고 있다”고 밝혔다.
제주4·3 행불수형인 유족들이 30일 오전 제주지방법원에서 대기하고 있다.
재판부는 또 “당사자 10명 가운데 일부는 형무소에서 사망한 사실이 통지됐으며, 일부는 제적등본에 사망한 것으로 쓰여 있다. 현재 살아있으면 100살이 넘는 분들도 있다”며 “이를 보면 재심청구 당시인 2019년에 살아있다고 가정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모두 사망했다고 보고 피고인들의 배우자와 형제자매, 자녀들이 청구한 재심청구는 적법하다”며 “재심 사유로서 불법구금과 수사 과정에서의 고문이 행해진 사실은 여러사례로 밝혀졌다. 생존자들의 증언도 마찬가지다. 잔혹한 시절이었던 만큼 (이들 행방불명인에 대해) 그러한 불법행위가 자행되지 않았다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제주4·3희생자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는 지난해 6월3일 법원에 행불 수형자 10명에 대한 첫 재심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올해 2월18일에는 행불인 수형자 340여명이 추가로 재심을 청구했다.
앞서 수형 생존자 18명은 지난해 1월 제주지법에서 이뤄진 재심 청구소송에서 고문과 불법 구금, 불법 재판 등이 인정돼 사실상 무죄 취지의 공소 기각 판결을 받았다.
지난 1999년 발굴된 <수형인 명부>를 보면, 제주4·3 당시인 1948년과 1949년 군사재판에 넘겨진 뒤 다른 지방 형무소에서 수형 생활을 한 제주도민이 2530명에 이르며,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한국전쟁 직후 학살돼 돌아오지 못했다.
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