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조천읍 출신 강희철(64)씨는 5공 시절 대표적인 간첩조작사건 피해자이다. 1975년 3월 부모가 있는 일본 오사카로 밀항해 생활하다가 81년 2월 불심검문에 걸려 한국으로 강제송환됐다. 강씨는 86년 4월 제주시내 대공분실에서 85일 동안 구금된 채 고문을 받은 뒤 87년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강씨는 98년 8·15 때 가석방된 뒤 재심 소송을 통해 2009년 무죄를 선고받았다.
제주시 도련동 국가폭력 기억공간인 ‘수상한 집’을 만든 강광보(81)씨도 고교 3학년 때 일본에 밀항해 친척집에서 생활하다 불법체류자로 적발돼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간첩이 됐다. 강씨는 86년 8월 국가보안법 위반(간첩)으로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91년 5월 석방됐다. 강씨도 재심 청구소송을 통해 2017년 7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제주지역에서 이런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조례가 발의됐다. 강성민 제주도의원(더불어민주당)은 ‘제주도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등의 명예회복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11일 밝혔다.
조례안은 △간첩조작사건의 정의 △도지사의 책무 △실태조사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등을 위한 지원사업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등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고 자문하기 위한 지원위원회 설치 등의 내용이 규정돼 있다. 조례안은 간첩조작사건 피해자를 “국가보안법 등의 위반을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이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사건의 피고인“으로 정의하고, 각종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강 의원은 “제주도민 가운데 간첩조작사건으로 지금까지 고통을 겪는 피해자 및 유족들의 명예회복과 지원을 통해 간첩조작사건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고 인권신장과 민주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이 조례안을 제안하게 됐다. 이달 회기 안에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도는 조례 취지에 공감하지만 상위법 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제주지역에서는 일제 강점기와 4·3을 거치면서 일본으로 건너간 제주 출신들이 많다. 1960~80년대 일본으로 생계를 위해 건너간 제주도민들은 일본내 친인척들의 총련 활동으로 공안기관에 의해 간첩으로 조작되는 사례가 있었다.
‘수상한 집’에 따르면 진실화해위원회 및 인권단체 등의 현황을 포함한 제주지역 간첩조작사건 피해자는 39명으로 이 가운데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된 피해자는 35명이며, 나머지 4명도 재심이 진행중으로 나타났다. 또 천주교 인권위원회 자료(2006)를 보면 전체 간첩조작사건 109건 가운데 34%에 이르는 37건이 제주도 관련 사건으로 조사됐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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