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전 제주 강정마을에서 마을회와 제주도, 제주도의회 간에 ‘상생 화합 공동선언식’이 열린 가운데 행사장 주변에는 반대단체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고, 맞은 편에는 마을회 등의 명의로 ‘강정 민심을 존중하라’는 펼침막이 내걸려 있다. 허호준 기자
제주 서귀포시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계기로 격렬한 갈등을 겪은 강정마을에서 상생 화합을 공동선언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14년 동안 계속돼 온 갈등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하지만 일부 주민과 활동가들은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 대한 진상규명이 먼저라며 반발했다.
강정마을회는 31일 오전 10시 원희룡 제주지사와 좌남수 제주도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강정 크루즈터미널 앞에서 ‘상생 화합 공동선언식’을 열고 서로 손을 잡았다. 강정마을회 요청으로 마련된 이날 행사는 지난 2007년 6월부터 14년에 걸친 마을 내 주민 간 갈등과 주민과 해군·행정기관 간 갈등을 끝내자는 취지였다.
원 지사는 이날 “제주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입지 선정과 건설 과정에서 큰 상처를 입은 주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제주도정이 불공정하게 개입했고, 주민 의견 수렴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채 무리하게 추진한 일”이라며 해군기지 건설 갈등과 관련한 제주도의 잘못을 인정했다.
원 지사는 “강정마을과 도의회, 도정이 함께하는 상생선언은 갈등 해소의 끝이 아니라 완전한 해결을 위한 시작이다. 마을회와 상생협약을 맺어 마을주민의 아픔을 치유하고 보상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31일 오전 제주 강정마을에서 상생 화합 공동 선언식이 진행된 가운데 좌남수 도의장과 원희룡 지사, 강희봉 마을회장(왼쪽부터)이 화합의 손짓을 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좌남수 의장도 “2009년 12월 본회의에서 (해군기지 건설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절대보전지역변경 동의안’과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환경영향평가서 협의내용 동의안’ 등이 처리됐다. 도의회의 책임을 통감한다. 도의회 의장으로서 깊은 유감을 표하고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머리를 숙였다.
이에 강희봉 마을회장은 “뿌리 깊게 내린 갈등과 반목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도지사와 의장의 사과를 받고 용서해 미래로 나가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고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나 이들이 발언하는 동안 행사장 주변에서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주민회와 강정평화네트워크 등이 상생화합식을 규탄하며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국가가 진정 사과하려면 진상규명을 통해 해군기지의 진실이 드러나야 한다. 지역발전이라는 허울을 내세워 해군기지를 유치하게 했던 그 방식으로는 결코 상생도 화합도 할 수 없다”며 해군기지 건설 진상규명을 강하게 요구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10월11일 강정마을 주민과의 대화에서 “국가 안보를 위한 일이라고 해도 주민들과 깊이 소통하지 못했고, 도민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진 점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고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사과했다. 2019년 7월과 지난해 8월에는 경찰청장과 해군참모총장이 사과한 바 있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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