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영장 설치공사를 하며 드러난 남해왜성 성벽 돌이 공사장 주변에 무더기로 쌓여 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성된 군사유적인 경남 남해왜성(선소왜성)이 최근 야영장 설치공사로 심하게 훼손됐다. 야영장 설치를 허용한 남해군청 쪽은 “남해왜성 유적과 야영장 공사장이 겹친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해명하지만, 문화재 전문가들은 “남해군이 책임을 피하려고 발뺌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11일 남해군의 설명과 군에서 소집한 ‘전문가 검토회의’ 결과를 종합하면, 남해군은 경남 남해군 남해읍 선소리 일대 7857㎡에 야영장을 설치하려는 개인사업자 건축신고를 지난 8월18일 수리했다. 지난 1월 건축신고를 접수받아 관련 부서와 협의에서 문제없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개인사업자는 지난 9월1일 야영장시설 착공신고 뒤 공사를 시작했다.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남해왜성이었는데, 섬 언덕 위에 있어 조선 수군 동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군사요충지였다. 현재는 전경이 일품인 한적한 어촌마을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횟집과 카페가 늘고 있다.
공사 두달 만인 지난 2일 인근 지역 주민은 남해군에 야영장 공사로 남해왜성 매장문화재가 훼손됐다며 신고했다. 남해군 문화재관리 담당 부서는 이날 현장에서 성벽 일부가 훼손된 사실을 확인하고, 다음날 공사를 중지시켰다. 여러개 단으로 이뤄졌던 성터 바닥을 중장비가 들어가서 높은 곳은 까뭉개고 낮은 곳은 북돋운 뒤 평평하게 다지고 있었다. 공사장 둘레는 1~6m 높이의 콘크리트 옹벽이 설치돼 있었다. 또 성벽을 허물어 대형 차량이 오갈 수 있는 진입로를 조성했고, 해체된 성벽 돌은 공사장 주변에 나뒹굴었다.
남해군은 지난 4일 문화재 전문가들을 불러 ‘전문가 검토회의’를 열었다. 전문가들은 회의에서 “야영장시설을 위해 진입로 확장, 옹벽 설치, 평탄 작업 등을 하면서 남해왜성을 구성하는 본성과 외성 중 외성 성벽이 전체적으로 훼손됐다. 특히 진입로 확장으로 북쪽 부분 성벽 파괴가 확실하다. 공사하며 흙을 북돋운 부분 아래에는 성벽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1차 결론을 내렸다.
야영장 설치공사를 하면서 훼손된 남해왜성의 외성 부분. 여러개 단으로 이뤄졌던 성터 바닥면은 평평하게 다져졌고, 성벽을 허물고 진출입로가 조성됐으며, 둘레엔 콘크리트 옹벽이 세워졌다.
개발인허가를 담당하는 남해군 도시건축과는 “건축신고를 접수한 뒤 정해진 절차에 따라 관련 부서와 협의했는데, 문화재 담당 부서에선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아 문화재 관련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남해군 문화관광과 쪽은 “남해왜성이 본성과 외성으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문화재청 문화유적분포지도에 남해왜성 본성은 표시돼 있지만, 외성은 표시돼 있지 않다. 그래서 야영장을 설치하더라도 남해왜성을 훼손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남해왜성 들머리의 안내판에는 ‘(남해)왜성은 선소마을 북쪽 해발 44m 구릉에 위치한 본성과 그 남쪽 구릉 일대에 위치한 외성으로 구분된다’ ‘본성과 외곽선으로 연결된 외성은 구릉 동쪽 정상부에서 서쪽으로 가면서 단을 연속으로 조성하였다’고 적혀 있다. 또 남해왜성 전체 도면도 안내판에는 본성과 외성이 함께 그려져 있다. 남해군 관련 부서 직원 누구라도 야영장시설 건축신고 수리 전에 한번만 현장을 확인했다면 남해왜성 훼손을 막을 수 있었던 셈이다.
대책 마련을 위해 문화재청 자문 의뢰를 받은 한 전문가는 “담당 공무원이 남해왜성을 몰랐다거나, 문화재청 문화유적분포지도에 표시돼 있지 않아 남해왜성 외성의 실체를 몰랐다고 하는 것은 너무도 뻔뻔한 변명이다. 책임을 피하기 위한 발뺌”이라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남해왜성은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노량해전과 관련된 중요한 유적이다. 서둘러 매장문화재 훼손 현황을 파악해 원상복구하고, 보호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일권 남해군 문화재팀장은 “관련 부서 협의 때 깊이 검토하지 않은 것은 결과적으로 아쉽다. 현재 문화재청의 검토 결과와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 훼손 유적 원상복구, 시굴조사를 통한 추가 매장문화재 여부 확인, 보존대책 등 원론적 지시가 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왜성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남해안 일대에 건설한 성으로, 유적과 기록을 통해 현재까지 31곳이 확인됐다. 왜군이 세운 성이라는 점 때문에 외면받기도 했으나, 최근엔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을 극복한 우리 조상이 자손에게 물려준 전리품으로 재평가받는다. 정유재란 때인 1597년 왜군 장수 와키자카 야스하루에 의해 세워진 남해왜성에는 당시 대마도주였던 소 요시토시가 이끄는 왜군 1천명이 주둔했다.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이 열린 곳과 가까워 당시 패주한 일본군들이 숨어든 곳이기도 하다. 최근까지 성 내부가 농경지로 이용돼 성벽 등이 비교적 온전히 보존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글·사진 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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