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증언’ 전시에 인공지능(AI)으로 답변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3) 할머니의 모습.
할머니,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입니다.”
어떻게 ‘위안부’ 피해 증언을 하게 되셨나요?
“참, 묻는 사람들은 그냥 묻지만 (저는) 이 이야기를 하면 피가 끓어요.”
위안부 피해자를 시간과 공간을 넘어 만난다. 피해자 증언이 인공지능(AI)과 접목되면서다.
24일 대구시 중구 일본군‘위안부’역사관 희움에서 열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증언전’의 ‘영원한 증언’ 코너를 찾아 인공지능으로 구현된 모니터 속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3) 할머니를 만났다. 미리 준비된 마이크에 대고 할머니에게 위안소로 끌려갔던 기억을 물었다. “만 14살 때 창문 사이로 한 아이가 나오라고 손짓해 따라 나갔더니 일본 군인이 뒤에 서 있었다”는 답이 나왔다. 실제 대화하는 듯했지만, 실은 인공지능이 질문 내용을 분석해 녹화된 답변 영상을 보여준 것이다. 질문을 인식하지 못하면 “조금만 천천히 다시 말씀해주세요”라고 되물었다.
이 할머니에게 ‘일본 정부에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영상 속 목소리가 높아졌다. “죄를 알아야 한다. (일본은) 죄를 모르고 거짓말만 한다. 이렇게 역사의 산증인이 이야기해도 그런 적이 없다고 하는데, 천지가 다 알고 있다.”
아픈 과거사만 담긴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노래가 있느냐’고 묻자, 갈색 한복을 입고 앉은 할머니는 들썩들썩 리듬을 타면서 ‘내 나이가 어때서’를 부른다. 그는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라는 원곡 가사를 ‘활동하는 데 나이가 있나요’라고 바꿔 부르며 흥겨워했다.
이용수 할머니 맞은편에는 이옥선(94) 할머니가 있다. 증언을 들으러 온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우리 힘이 모자라서 (일본 정부의) 사죄를 받지 못했다. 힘닿는 대로 사죄를 받게 해달라”는 당부 말이 나왔다.
여성가족부와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주최한 이번 행사는 김주섭 서강대 교수(지식융합학부)의 영원한증언 연구팀이 2018년부터 이어온 프로젝트의 결과다. 연구팀은 피해 생존자 13명 가운데 대화가 가능한 이용수, 이옥선 할머니와 함께 1000개의 경우의 수를 가정해 답변 영상을 찍었다. 여기에 대화형 인공지능 기술을 더해 500개 유형의 질문을 인식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했다.
김 교수는 “2018년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증언을 대화형 인공지능 방법으로 기록한 프로젝트 시연회가 있어 미국에 갔었는데, 우리도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으니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을 이런 방식으로 보존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프로젝트를) 추진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프로그램으로 ‘위안부’ 문제를 전 인류가 함께 기억하도록 하는 데 보탬이 됐으면 한다. 나아가 끝나지 않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기반이 되면 좋겠다”며 “그러기 위해서라도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보다 풍부하게 보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할머니들의 삶을 온전히 담아낼 만한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고 자평한다. 김 교수는 “모든 질문에 (인공지능 속) 할머니가 완벽하게 대답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대화가 될 수 있도록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을 계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번 전시를 마친 뒤 오류를 보완해 향후 국내와 미국에서 본전시를 열 계획이다.
글·사진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