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왕국’ 가야의 뛰어난 문화 수준을 증명하는 가야고분군이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을까?
세계유산위원회는 오는 6월19~30일 러시아 카잔에서 회의를 열어 ‘가야고분군’(Gaya Tumuli)의 세계유산 등재 여부를 결정한다. 앞서 가야문화권인 경남·경북·전북 등은 2013년부터 뜻을 모아 가야고분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9년 동안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 세계유산 등재신청 대상 선정, 등재신청서 완성도 검토 등 절차를 모두 통과하고, 세계유산위원회 최종 결정만 남겨놓았다.
기원전 1세기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태동해 562년 대가야 멸망에 이르기까지 600여년에 걸쳐 번성했던 가야가 남긴 고분은 수십만기(고분군 기준 780곳)에 달한다. 이 가운데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연속유산(지리적으로 인접하지 않으나 관련성이 높은 유산)은 △가야의 시작과 왕묘의 출현을 나타내는 김해 대성동 고분군 △순장 제도를 보여주는 함안 말이산 고분군 △일본·중국은 물론 서역 교류를 증명하는 합천 옥전 고분군 △가야고분군 중 가장 규모가 큰 고령 지산동 고분군 △봉분 하나에 여러 기를 순차적으로 조성한 고성 송학동 고분군 △화려한 장식마구와 금동관 등이 출토된 창녕 교동·송현동 고분군 △중국계·백제계 유물이 출토된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 등 7곳이다. 행정구역별로는 경남 5곳, 경북 1곳, 전북 1곳이다.
애초 2013년까지는 경남과 경북이 제각각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했다. 하지만 문화재청이 유사한 성격의 유산을 하나로 묶어 등재할 것을 권고함에 따라, 대표적 가야고분군 35곳을 전문가들이 검토해서 7곳을 후보지로 선정했다. 이들 7곳은 가야 정치체의 각 중심지에 위치하고, 가야문명을 대표적으로 증명하며, 가야문명의 사회구조를 반영한 묘제와 부장유물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네스코 유산’은 세계유산·무형문화유산·세계기록유산 등 세가지로 나뉜다. 세계유산은 모두 10개 기준이 있는데, 가야고분군은 세번째 기준인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에 해당한다. 가야고분군이 등재되면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석굴암·불국사 등에 이어 국내 16번째 세계유산이 된다.
7개 고분군이 위치한 3개 광역단체(경남·경북·전북도)와 7개 기초단체가 공동으로 꾸린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추진단은 “가야고분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다는 것은 가야사의 세계사적 인증을 통해 가야가 고구려·백제·신라에 대응하는 역사적 실체로 인정받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는 세계적 지위 획득을 통해 관광수요 증대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2017년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를 국정과제에 포함하고,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를 지원하고 있다. 2020년 초광역협력 가야문화권 조성 계획도 마련했다. 이 작업은 가야고분군 발굴·정비에서 시작해 △가야사 규명·확립 △가야 유산 합리적 보존·관리 △가야 역사자원 활용과 가치창출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2020년 10월엔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 김해 양동리 270호분 출토 수정목걸이,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가 보물로 지정됐다.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가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다.
지난 2월18일 ‘식민사관으로 왜곡된 가야사 바로잡기 전국연대’는 기자회견을 열어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추진 보류와 <가야고분군 연구총서> 폐기를 문화재청에 요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가야고분군 등재 추진 과정에 학술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엄청난 결함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신청서’가 일본 제국주의가 만든 이른바 식민사관으로 오염되어 가야의 실상을 밝히기는커녕 널리 알려진 가야사 자체마저 왜곡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야사 바로잡기 경남연대’ 공동대표인 김영진 경남도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17일 경남도의회 본회의에서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추진 과정에서 일본 극우파와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이 소환되었다”며 “임나일본부설을 동반한 채로 등재하면 왜(일본)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우리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고, 이는 고대부터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특히 ‘다라국’과 ‘기문국’이라는 가야의 나라 이름을 문제 삼는다. 세계유산 등재신청서에 경남 합천군 옥전 고분군은 ‘다라국’, 전북 남원시 유곡리·두락리 고분군은 ‘기문국’ 고분으로 분류돼 있다. 그런데 다라국·기문국 등은 우리 역사서인 <삼국유사>에는 나오지 않고, <일본서기>, <양직공도> 등 일본·중국 역사서와 자료에 나오는 이름들이다.
논란은 가야에 대한 문헌 기록과 최근 발굴로 확인된 가야의 실체가 배치되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기존에 당연시됐던 가야에 관한 일반적인 상식은 ‘수로왕 등 여섯 형제가 건국한 금관·아라·대·소·성산·고령가야 등 여섯개 작은 나라’다. 하지만 2018년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추진단’이 펴낸 <가야고분군 연구총서>(연구총서)는 이를 두고 “<삼국유사> 기록 때문에 빚어진 허구일 뿐, 역사적 사실과 완전히 거리가 멀다”고 밝히고 있다. 가야사 연구 관련 20개 기관의 전문가 25명이 공동집필한 연구총서는 “<삼국지>, <삼국사기>, <일본서기>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할 때 가야는 작은 나라 12개 이상으로 이뤄져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이에 따라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고분군 7곳은 금관가야(김해 대성동 고분군), 아라가야(함안 말이산 고분군), 비화가야(창녕 교동·송현동 고분군), 소가야(고성 송학동 고분군), 다라국(합천 옥전 고분군), 대가야(고령 지산동 고분군), 기문국(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등으로 정리했다. 또 한·일 양국 역사학계의 오랜 논쟁거리인 ‘임나일본부’에 대해서는 “왜 왕권이 가야에 파견했던 외교사절”이라고 정의했다.
김수환 경남도 가야문화유산과 학예연구사는 “<삼국유사> 등 우리 역사서에 성산가야와 고령가야라는 이름이 나오지만, 이 지역 고분군을 발굴한 결과 가야가 아닌 신라 고분인 것으로 확인됐다”며 “반대로 우리 역사서에 경남 합천과 전북 남원 지역 가야국 이름이 나오지 않는데, 이 지역 고분군을 발굴한 결과 가야 고분이 명확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발굴 결과 분석과 한·중·일 고문서 교차 검토 등을 거쳐 ‘다라국’과 ‘기문국’ 이름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는 왜가 가야를 지배했다는 이른바 임나일본부설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설명했다.
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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