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는 광부 2명이 안대를 착용하고 병상에 누워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 붕괴 사고로 221시간 동안 지하 190m 갱도에 고립됐다 구조된 광부 2명이 건강을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6일 광부들이 입원 중인 안동병원의 의료진과 가족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생환 광부 2명은 일반 병실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이들은 5일 점심부터 식사로 죽을 먹고 있으며, 시력을 보호하기 위해 착용한 안대도 벗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병원 쪽은 “근육 손상도 경미한 수준이라 병원 복도와 화장실을 혼자 걸어서 다니고 있다”고 전했다.
이 병원의 방종효 신장내과 과장은 “정신적·육체적으로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며칠 안에 퇴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방 과장은 “장시간 굶었기 때문에 한꺼번에 많은 양을 식사하면 대사장애가 올 수 있어, 식사량을 조금씩 늘리고 있다. 또 갑자기 밝은 빛을 보게 되면 망막과 각막 손상이 올 수 있기 때문에 사흘 정도에 걸쳐 서서히 시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노출 시간을 조절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광부 가족들도 “걱정했던 것보다 건강 상태가 좋아 보인다. 식사도 잘하시고, 식사 뒤에는 운동 삼아서 병원 복도를 5~10분씩 걸어 다닌다”고 말했다.
지하 190m 갱도에서 221시간이나 고립돼 있었는데도 건강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것은 이들이 위기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비상시 매뉴얼에 따라 행동하며 구조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지난달 26일 오후 6시 작업 중이던 지하 190m 지점에 굉음과 함께 토사가 밀려들어오자 작업 구간에서 30m 정도 떨어진 널찍한 지하 공간으로 신속하게 대피했다. 갱도 안에서 붕괴 사고가 발생하면 공기가 들어오는 쪽, 물이 흘러나오는 쪽으로 대피해 공간을 확보하고 기다리라는 매뉴얼을 충실히 이행한 것이다. 작업 구간과 대피 공간에는 미리 비치해둔 비상식량이 없었지만, 갱도에 들어갈 때 가져간 믹스커피와 암벽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먹으며 구조를 기다렸다. 믹스커피에는 생존에 필수적인 당과 탄수화물, 지방이 들어 있어 극한 상황에서 체온과 체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다.
지하 공간은 기온이 13도 안팎으로 서늘한데다 바닥까지 젖어 있었지만, 판자를 깔고 비닐을 둘러 습기와 한기를 막고 나뭇조각으로 모닥불을 피워 체온을 유지한 것도 극한 상황을 버틸 수 있었던 배경이다. 광부들은 외부로부터 구조의 손길이 오기만 기다린 것도 아니다. 화약을 모아 암벽을 폭파하고, 곡괭이로 10m 가까이 흙을 파는 등 스스로 탈출하기 위한 시도도 적극적으로 했다.
방종효 과장은 “믹스커피와 물을 섭취한 게 큰 도움이 됐지만, 구조가 3~4일만 늦었어도 생명을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방장석 중앙119구조본부 충청·강원 특수구조대 구조팀장도 “오랜 작업 경험과 평소 숙지한 비상수칙을 따라 대피한 뒤 상황을 비관하지 않고 구조를 기다린 베테랑 광부의 지혜로운 판단이 무사 생환의 결정적 동력이었다”고 말했다.
이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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