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옥희 울산교육감이 지난 3월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자녀들의 등굣길을 함께하는 모습. 노옥희 교육감 페이스북 갈무리
교육행정 신뢰 회복을 위해 청렴도를 강화하고, 유치원에서부터 초·중·고교 전면 무상급식 등 교육복지 시책에 힘써온 노옥희 울산시교육감이 8일 별세했다. 향년 64.
울산시교육청 등의 말을 들어보면, 노 교육감은 이날 낮 12시25분 울산시 남구의 한 식당에서 기관장 협의회에 참석했다가 갑자기 쓰러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급대는 심폐소생술을 하며 노 교육감을 근처 중앙병원으로 옮겼지만, 그는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고 한다. 결국 노 교육감은 낮 12시53분 사망 판정을 받았다. 강진석 울산시교육청 대변인은 “(병원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원래 특별한 지병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노 교육감은 1958년 경남 김해시 생림면에서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부산의 데레사여고를 졸업한 뒤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여성으로서는 마을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대학(부산대 수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뒤 울산 현대공업고등학교에서 수학교사로 일했다.
평범한 교사로 일하던 노 교육감은 한 학생이 취업 중 산재 사고를 겪고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던 상황을 목격하며, 노동자의 현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이후 와이엠시에이(YMCA) 독서모임 등을 하면서 교육 현실에 눈을 떴고, 1986년 10월 ‘교육 민주화 선언’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해직됐다.
노옥희 울산교육감이 지난 3월21일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자녀들이 등교한 교실을 방문한 모습. 울산교육청 제공
노 교육감은 노동문제상담소에서 간사로 일하던 1987년 노동자대투쟁 때 3자 개입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이후 교육과 노동운동에 온 힘을 다했고, 1999년에 교사로 복직됐다. 그는 전교조 1·2대 울산지부장과 울산시교육위원으로 일하면서 고교 평준화 등 교육개혁에 힘을 쏟았다. 2005년에 교육감에 처음으로 도전했지만, 낙선했다. 2006년과 2010년에는 울산시장에, 2008년에는 총선에 출마했지만 모두 고배를 마셨다.
노 교육감은 “부패하고 부끄러운 울산교육을 청산하고 대한민국 혁신교육을 선도하는 울산교육을 만들겠다”며 2018년 6·13 전국 시·도 교육감 선거에 출마해 35.6% 득표로 2위 후보자를 큰 표차로 따돌리고 당선됐다. 2010년 교육감 직선제가 시작된 뒤 ‘보수 텃밭’으로 분류되던 울산에서의 첫 진보 교육감이었다.
2018년 6월 <한겨레>와 인터뷰 중인 고 노옥희 교육감. <한겨레> 자료사진
그는 교육감에 당선되자 금품·향응 수수 등 중대비리에 대한 ‘원스트라이크 아웃’의 단호한 조처로 만년 꼴찌였던 울산시교육청 청렴도를 중위권으로 올렸다. 무상급식도 유치원에서부터 고교까지로 전면 확대했으며 초등 학습준비물비 지원 확대, 초·중·고 수학여행비와 교육비 지원 등 교육복지 시책을 펼쳤다. 이에 지역 교육에 새로운 변화와 혁신의 바람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2년 6·1 선거에서도 55.03% 득표로 재선에 성공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애도문을 내고 “노 교육감의 갑작스러운 비보에 비통한 마음 금할 길 없다”고 밝혔다. 이 부총리는 “노 교육감은 울산 지역 최초의 ‘여성’ 교육감으로서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울산교육’ 실현을 위해 헌신하고 또 헌신했다”며 “우리나라 교육 발전을 위한 노 교육감의 열정과 뜻을 잊지 않겠다”고 기렸다.
빈소는 울산시티병원 브이아이피실에 마련된다. 발인은 12일 아침 8시30분이다. 영결식은 같은 날 오전 10시 울산시교육청에서 거행된다. 장지는 경남 양산 솥발산 공원묘지다.
김영동 기자
yjlee@hani.co.kr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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