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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명 사는 한산 봉암마을, 전통주 빚기에 푹 빠진 까닭은

등록 2023-01-03 06:00수정 2023-01-03 08:13

‘어촌 뉴딜’로 거듭나는 통영 봉암마을
경남 통영시 한산면 봉암마을 주민들이 지난 12월30일 마을 큰뜰에 모여 자신들이 직접 빚은 전통주를 거르고 있다. 최상원 기자
경남 통영시 한산면 봉암마을 주민들이 지난 12월30일 마을 큰뜰에 모여 자신들이 직접 빚은 전통주를 거르고 있다. 최상원 기자

“내 평생 온갖 술을 맛봤지만 이렇게 좋은 향은 처음이네.”

김정호 봉암마을 이장은 막 걸러낸 우윳빛 막걸리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지난해 12월30일 경남 통영시 한산면 봉암마을 큰뜰에 모인 마을주민들은 자신들이 직접 빚은 전통주를 걸러서 첫맛을 봤다. 지난해 11월19일 빚은 단양주와, 11월21일 빚은 밑술에 11월25일 덧술을 보탠 이양주이다.

“단양주는 60점, 이양주는 70점을 드리겠습니다.” 이들에게 전통주 빚기를 가르친 허승호 ‘전통주 이야기’ 대표의 평가는 냉정했다. 허 대표는 “서두르지 않고 계속 실력을 쌓으면, 머지않아 100점을 맞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봉암마을 주민들은 새해 1월1일 아침 마을 명물인 봉암 몽돌해수욕장에서 열린 해맞이 행사 때 방문객들에게 자신들이 빚은 전통주를 대접하고, 평가도 받았다. ‘봉암 몽돌여행 협동조합’의 이점균 이사는 “지역특산주를 맛보려는 한산도 관광객이 꽤 있다. 그런데 정작 한산도를 대표할 특산주가 없다. 우리 마을주민들이 전통주를 빚은 한산도 특산주를 개발하면 주민 소득 증가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봉암마을 주민들은 지난 1월1일 봉암 몽돌해수욕장에서 열린 해맞이 행사 때 방문객들에게 자신들이 빚은 전통주를 대접하고, 평가를 받았다. ‘봉암 몽돌여행 협동조합’ 제공
봉암마을 주민들은 지난 1월1일 봉암 몽돌해수욕장에서 열린 해맞이 행사 때 방문객들에게 자신들이 빚은 전통주를 대접하고, 평가를 받았다. ‘봉암 몽돌여행 협동조합’ 제공

임진왜란과 이순신 장군의 위업이 서려 있는 한산도는 65개 섬으로 이뤄진 경남 통영시 한산면에서 가장 큰 섬이다. 뛰어난 경관을 뽐내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통영항 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25분이면 갈 수 있다. 이런 터라 한산도를 찾는 관광객은 코로나19 때 주춤했으나 지난해 11월30일 현재 약 19만명에 이른다.

봉암마을은 한산섬에 딸린 작은 섬인 추봉도에 있다. 2007년 한산도와 추봉도를 연결하는 다리가 놓이면서 두 섬은 한몸이 됐다. 봉암마을에 기회가 열린 셈이다.

실제 몇년 전부터 봉암마을 주민들은 마을을 관광지로 조성하는 방안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왔다. 인구 고령화와 소멸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바닷일만 고집하기는 어려운 처지도 이들이 고민을 거듭한 이유 중 하나다. 실제 주민등록상 지난 12월31일 기준 봉암마을 전체 주민은 56가구 83명이나, 실제 거주자는 51명에 그친다. 그것도 90대 3명, 80대 15명, 70대 16명, 60대 15명, 50대 1명, 40대 1명으로 고령화가 심각하다. 10년 전 강영희(48)씨가 남편 이점균(54)씨와 함께 친정 봉암마을로 귀어하지 않았다면, 이 마을주민은 60대 이상 노인들로만 이뤄질 뻔했다.

수루에서 바라본 전경.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로 시작하는 이순신 장군의 시조 ‘한산도가’에 나오는 수루가 바로 이곳이다. 최상원 기자
수루에서 바라본 전경.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로 시작하는 이순신 장군의 시조 ‘한산도가’에 나오는 수루가 바로 이곳이다. 최상원 기자

주민들은 봉암마을을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서 정부 사업인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을 2016년과 2017년 연달아 신청했으나 모두 떨어졌다. 2018년에는 해양수산부가 새로 추진하는 ‘어촌뉴딜 300사업’을 신청했으나 또 떨어졌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2019년 사업계획을 마을개발 중심에서 소득사업 중심으로 완전히 바꿔서 재도전해, 결국 2020년 ‘어촌뉴딜 300사업’ 대상지로 선정됐다.

‘어촌뉴딜 300사업’은 300개 어촌마을을 선정해 선착장 등 어촌 기반시설을 현대화하고, 자연경관·문화유산·지역특산물 등을 활용한 특화된 사업을 추진해 어촌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사업이다. 해양수산부는 2019년부터 2024년까지 마을당 평균 100억원씩 모두 3조원을 이 사업에 투입하고 있다. 핵심목표는 사업 결과물이 주민들에게 스며들어 지역 자산으로 정착하는 것이다. 예산지원이 끝나더라도 주민 스스로 사업을 이어가면서 마을을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봉암마을 주민들은 어촌체험마을도 조성할 계획이다. 오는 6월에는 관광객을 위한 마을식당·매점·숙소도 문을 연다. 강봉헌 봉암마을 어촌계장은 “조개캐기, 선망통발 등 다양한 체험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문어·게·장어·전복·고동·바지락 등 체험활동 수확물을 마을식당에 가져오면, 음식으로 조리도 해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모든 사업의 기획·운영은 주민 스스로 해야 한다. 이 중심에는 2020년 9월2일 설립한 ‘봉암 몽돌여행 협동조합’이 있다. 지난 12월31일 기준 마을주민 33명이 조합원으로 참여해, 출자금 2억2500만원을 모았다. 이사장은 김정호 이장이 맡았다. 조합원은 봉암마을 어촌계 회원이면서, 1년에 300일 이상 봉암마을에 거주하는 주민이면 된다. 조합원들은 수익금의 20%를 협동조합 기금으로 적립하고, 나머지를 나눠 갖기로 했다.

조합원들은 어촌체험마을과 식당·매점·숙소를 운영하기 위해 2020년부터 전통주 만들기, 바리스타, 위생관리, 친절서비스, 컴퓨터, 마을해설사, 갈등관리 등 다양한 교육을 받았다. 체험마을 운영 컨설팅과 식당 창업 컨설팅도 진행하고 있다. 주민교육은 한국농어촌공사 고성·통영·거제지사가 맡아서 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집무실로 사용했던 운주당을 복원한 제승당. 최상원 기자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집무실로 사용했던 운주당을 복원한 제승당. 최상원 기자

농어촌공사의 박하경 대리는 “시설 유지관리와 사업 운영을 주민 스스로 해야 하므로 주민역량 강화가 매우 중요하다. 주민들은 회의를 통해 필요한 교육을 스스로 정했고, 한국농어촌공사는 주민들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하고 지원했다. 철저히 상향식 교육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김상원 경남도 어촌발전과 주무관은 “오는 6월 1차적으로 마을주민 일자리가 최소 5개 생길 것으로 예상한다. 중장기적으로 소득 증가는 물론 마을 활성화, 주민 생활만족도 향상, 마을 이미지 개선도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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