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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하철 아빠, 스텔라데이지호 누나…“정부는 다 똑같았다”

등록 2023-02-19 14:00수정 2023-02-20 02:42

대구지하철참사 20주기를 맞아 지난 17일 오후 대구시 중구 와이엠시에이(YMCA) 백심홀에서 대구지하철희생자대책위,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인현동화재참사유가족협의회 등 8개 유가족 단체가 모여 ‘전국재난참사피해가족연대’을 꾸렸다. 김규현 기자
대구지하철참사 20주기를 맞아 지난 17일 오후 대구시 중구 와이엠시에이(YMCA) 백심홀에서 대구지하철희생자대책위,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인현동화재참사유가족협의회 등 8개 유가족 단체가 모여 ‘전국재난참사피해가족연대’을 꾸렸다. 김규현 기자

“2003년 대구 중앙로역에서 딸내미를 잃은 사람입니다.”

“태안 해병대캠프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병학이 아빠 이후식입니다.”

“스텔라데이지호 2등 항해사 허재용의 누나입니다.”

자신의 이름보다 별이 된 가족을 먼저 소개하는 이들이 모였다. 지난 17일 오후 대구지하철참사 20주기를 맞아 대구시 중구 와이엠시에이(YMCA) 백심홀에 둘러앉은 전국의 재난참사 피해 유가족들이다.

20년 전 대구지하철참사로 딸을 잃은 정인호(72)씨는 밀려오는 먹먹함을 숨기지 못했다. “목이 메이서 무슨 말부터 해야할지 모르겠십니다. 지구 상에서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들끼리 오늘 좋은 이야기 나누입시다.”

정씨는 2003년 참사 당시 대구시가 하루 만에 군부대를 동원해 참사 현장을 치운 일을 떠올렸다. 대구시는 참사 하루 뒤인 19일부터 지하철 일부 구간을 운행했고, 참사 현장을 물청소해버렸다. 실종자 수습도 마치지 않은 상태였다.

“조해녕(2003년 당시 대구시장)이 그 자슥이 흔적을 다 치아뿠어요. 우리 실종자 가족들은 뼈쪼가리 하나라도 찾을라고 쓰레기더미를 들시가미 찾았다고요. 그러이 지금껏 화가 난다 아입니까.”

그는 참사 해결 과정이 “시작부터 잘못됐다”고 말했다. “참사 흔적을 자꾸 없앨라고 대구시가 아직도 추모사업을 제대로 안 하는기라요. 우리는 (참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거 뿌이거든요.”

지난 17일 대구지하철참사 20주기를 앞두고 참사 장소인 중앙로역 ‘기억의 공간’에 마련된 희생자 분향소에서 한 시민이 분향하고 있다. 김규현 기자
지난 17일 대구지하철참사 20주기를 앞두고 참사 장소인 중앙로역 ‘기억의 공간’에 마련된 희생자 분향소에서 한 시민이 분향하고 있다. 김규현 기자

이후식(58)씨는 오는 7월이면 아들을 잃은지 10년이다. 그의 아들은 2013년 충남 태안에서 사설 기관이 운영하는 해병대캠프에 갔다가 숨졌다. 사고 뒤 교육부와 재발방지대책을 약속했지만 흐지부지됐다. “아들 장례치고 나니까 (재발방지대책을 약속했던) 계약은 없던 일이 됐어요. 교육부는 빨리 이 일을 끝내고 싶었던 거죠.”

그는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하려면 교육부의 책임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에서 거의 반강제로 보낸 캠프였는데 책임지는 공무원이 없어요. 우리가 제일 힘든 일은 아이들 참사에 책임 있는 공무원들이 특진하고 호사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017년 브라질에서 중국으로 향하던 남대서양에서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에 탄 허경주(44)씨의 동생은 6년째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배가 침몰한 위치는 심해 3500m, 당시 국내 기술로는 수색 불가능한 깊이였다. 정부는 2019년 유가족의 설득으로 미국 업체에 용역을 맡겨 배를 한 차례 수색했다. “당시 수색 때 수중 카메라에 뼈와 옷 사진이 아주 선명하게 나왔는데, 정부는 예산이 든다는 이유로 수색 업체를 철수시켜버렸어요.”

국회에서 2차 수색을 해야 한다는 공청회가 열렸고, 관련 예산도 책정됐지만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허씨는 “선박이 침몰한 이유는 명확했다. 업체가 선박 관리를 엉망으로 하면서 선원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이런 경영진을 제대로 처벌해야 같은 참사를 막을 수 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17일 대구지하철참사 20주기를 앞두고 참사 장소인 중앙로역 ‘기억의 공간’ 앞에서 ‘전국재난참사피해가족연대’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규현 기자
지난 17일 대구지하철참사 20주기를 앞두고 참사 장소인 중앙로역 ‘기억의 공간’ 앞에서 ‘전국재난참사피해가족연대’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규현 기자

재난참사를 대하는 당국의 태도는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고 한결같았다고 이들은 말한다. 대구지하철참사 유가족들은 2016년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찾았고,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2022년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찾았다. 먼저 일어난 참사의 사회적 책임을 묻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이끈 자연스러운 발걸음이었다.

윤석기 대구지하철희생자대책위원장은 “숨져간 희생자들이 살아남은 가족들에게 바라는 게 뭘까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했다. 답은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였다. 하지만 수습주체인 행정당국이나 사법당국은 언제나 우리를 귀찮은 존재로만 여긴다.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삶과 생명을 지켜달라고 권한을 위임했는데, 그들은 이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모인 대구지하철희생자대책위,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인현동화재참사유가족협의회, 가습기살균제참사범단체‘빅팀’(Victims), 태안해병대사설캠프참사유가족협의회, 스텔라데이지호대책위원회, 삼풍백화점참사피해가족협의회, 씨랜드참사가족협의회 등 8개 유가족 단체는 ‘전국재난참사피해가족연대’을 꾸렸다. 이들은 올해 ‘생명안전버스’를 타고 전국의 재난참사 피해자들과 연대하고, 내년 1월 재난참사 피해자를 돕는 ‘재난 피해자 권리 옹호 센터’(가칭)을 설립할 예정이다. 이들은 17일 대구지하철참사가 일어난 중앙로역 ‘기억의 공간’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자책이 모이고 나누어져 또 다른 사회적 책임이 생겼습니다. 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참사를 잊지 않고, 우리의 경험을 나눌 것입니다. 대구지하철참사가 스무 번째 돌아왔습니다. 모든 참사는 매년 돌아옵니다.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우리 사회의 안녕을 기원합니다.”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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